中-日 살벌한 감정싸움

  • 입력 2006년 3월 11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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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일본의 고위 당국자들이 이달 들어 거의 매일 가시 돋친 설전을 벌이고 있다.

동중국해 가스전 공동개발 협상의 결렬로 피차 감정이 상한 데다 말싸움의 당사자가 양국의 외교 책임자라는 점에서 냉랭한 관계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7일 중국 베이징(北京)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리자오싱(李肇星) 외교부장의 기자회견에서 한 일본 기자가 중-일 정상의 상호방문 재개 시기와 가스전 협상 결과 등에 대해 물었다.

리 부장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를 겨냥해 “외국 지도자들은 ‘고이즈미 총리가 왜 이렇게 어리석고 부도덕한 일을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며 “일본 지도자는 중국 인민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일을 앞으로 계속해선 안 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리 부장이 “중-일 관계가 악화된 것은 일본 탓”이라며 “외국 지도자들이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비판한 사례가 하도 많아서 3시간을 얘기해도 다 못할 지경”이라고 말하자 장내에 폭소가 터져 일본 기자들이 무안해하기도 했다.

이 발언이 전해지자 일본 외무성의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차관은 8일 왕이(王毅) 일본 주재 중국대사에게 외무성으로 들어오라고 여러 차례 통보했다. 공식 항의를 위해서였다. 하지만 왕 대사는 다른 일정이 있다는 이유로 응하지 않았다. 일본 측은 “외국 대사가 주재국의 소환 요청을 거부한 것은 외교 예의상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분개했다는 후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이뤄진 전화통화에서 야치 차관이 “견해차가 있더라도 적절한 표현을 사용해야 한다”고 항의했지만 왕 대사는 야스쿠니신사 참배 문제에 대한 중국 정부의 방침을 설명하면서 사과를 거부했다.

이번엔 일본이 반격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관방장관은 9일 “외교수장의 자리에 있는 인물이 일국의 지도자에게 ‘어리석다’거나 ‘부도덕하다’고 말하는 것은 품위가 없다”며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표시했다.

또 아소 다로(麻生太郞) 외상은 같은 날 참의원 답변에서 대만에 대해 “일본과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는 국가”라고 말해 가뜩이나 대만 문제로 신경이 곤두서 있는 중국을 자극했다.

중국의 친강(秦剛) 외교부 대변인은 “중국의 내정에 난폭하게 간섭한 행위”라고 비판했다.

외교 전문가들은 중-일 양국의 대립이 감정싸움 양상으로 번짐에 따라 외교 대화 채널을 복원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하종대 기자 orionha@donga.com

도쿄=박원재 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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