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정가 戰後세대 新매파]<下>냉정한 對韓의식

  • 입력 2006년 2월 10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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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소장파 의원들은 도쿄(東京)의 한국 특파원과 만나면 어김없이 동년배 한국 정치인들의 근황을 묻곤 한다. 가장 궁금해 하는 내용은 자신과 교분이 있는 한국 소장파의 정치적 성장 가능성. 한국의 ‘386세대’가 정치권에서 활약하는 사례를 거론하며 “세대교체 속도로는 한국이 훨씬 앞선다”고 부러워하기도 한다.》

60대 이상의 앞세대 의원들이 일본어로 대화하는 반면 젊은 세대의 교류는 주로 영어로 이뤄진다. 일부 의원은 사비를 털어 한국인 유학생을 비서로 고용해 한국과의 교류 창구로 활용하고 있다.

현재 한일 젊은 의원들은 3개월에 한 번꼴로 열리는 ‘한일 화상회의’와 한일의원연맹 소속 소장파 의원들이 정례적으로 만나는 ‘한일 젊은 의원 교류’ 등의 모임을 통해 왕래하고 있다.

4, 5년 전엔 ‘술을 함께 마시며 친목을 돈독히 하자’는 취지에서 ‘폭탄주 의원연맹’이 결성되기도 했다.

자민당 소장파가 한국을 대하는 시각은 복잡하다. ‘한국은 일본의 중요한 전략적 파트너’라고 치켜세우면서도 과거사가 대화 주제로 거론되는 것은 꺼린다.

최근엔 “일본의 우경화가 문제라고 하지만 한국도 너무 왼쪽으로 가는 것 같다”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는다.

▽‘과거사 반성, 할 만큼 했다’=과거사에 대한 이들의 속내는 오무라 히데아키(大村秀章) 중의원 의원의 발언으로 요약된다. “일본이 잘못한 것은 당연히 반성한다. 하지만 이제는 미래를 얘기할 때다.”

일부 의원은 짜증 섞인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아리무라 하루코(有村治子·35·여) 참의원 의원은 “일본의 정치인들은 지금까지 기회 있을 때마다 식민지 지배에 대해 사과했다”며 “일본이 잘못한 건 인정하지만 도대체 언제까지 반성해야 하는 건지 답답하다”고 말했다.

미즈노 겐이치(水野賢一) 중의원 의원도 “일본이 한반도에 좋은 일도 했다고 하는 주장엔 동의하지 않지만 외교 무대에서 지나간 일이 너무 부각되는 것은 양국 관계의 장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일본의 한 전문가는 “과거사는 자신들이 태어나기 전에 있었던 일이므로 이에 대한 책임은 부모 세대의 몫이라는 정서가 깔려 있다”며 “역사 문제에 대한 이들의 최대 전략은 침묵”이라고 분석했다.

소장파는 한국을 향한 불만도 거리낌 없이 털어놓았다.

북한 핵문제에 대한 한국 정부의 대응이 지나치게 미온적일뿐더러 중국에 기울어 미국과의 관계를 소홀히 하고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

고노 다로(河野太郞) 중의원 의원은 “한미동맹이 흔들리면 일본도 영향을 받기 때문에 한국의 대응을 주시하지 않을 수 없다”며 “한국 외교가 불안하게 비치는 것은 유감”이라고 말했다.

한 의원은 한국이 일본의 재무장을 경계하는 것에 대해 “한미일 동맹체제 아래에서는 한반도에서 만에 하나 비상사태가 발생할 경우 일본이 군사적 능력을 갖고 있는 게 한국에도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며 한국 측의 비판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충돌 소지 산적, 분석 서둘러야=박철희(朴喆熙)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내년 이후 소장파가 일본 정치의 전면에 나서면 한일 간에 불편한 기류가 형성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자민당의 고참 그룹이 대체로 한국의 반응을 살펴 가며 발언해 온 것과는 달리 소장파는 상대가 어느 나라든 입맛에 안 맞는 얘기도 하겠다는 자세이다. 한국의 감정을 자극하는 이들의 발언이 이어질 경우 양국 관계에 긴장이 흐를 가능성도 있다는 것.

야마모토 이치타(山本一太) 참의원 의원은 “인접국인 만큼 두 나라의 이해가 충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예전처럼 밀실에서 적당히 타협하는 식이 아니라 공개적인 자리에서 각자의 주장을 펴 시시비비를 가려야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일본 소장파의 발언권이 강해질 때에 대비해 이들의 ‘코드’를 분석하는 작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일본의 소장파는 한일 간의 교류가 경제,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굳건해졌기 때문에 정치에서 다소 마찰이 있어도 교류 자체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계산하고 있다. 따라서 감정이 상하더라도 할말은 하겠다는 것이다. 몇 년 뒤 일본 정부의 최고위층이 될 이들이 강경한 발언으로 한일 관계에 파문을 던질 날이 올 텐데 그때 발언의 진의를 파악하느라 법석을 떨지 않으려면 미리 이들의 ‘정체’를 파악해 둘 필요가 있다.”

도쿄=박원재 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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