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부도 위기’… 돈줄 쥔 美-日“예산안 거부”

  • 입력 2005년 1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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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개혁 부진을 이유로 사실상 유엔 예산안 승인을 거부한 미국의 입장에 일본이 동조하면서 유엔발(發) 재정 위기가 가시화되고 있다.

국가원수급 예우를 받는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이 1일 한국 중국 일본 순방을 며칠 앞두고 전격 연기를 발표했을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

유엔 예산안 승인을 거부하고 3개월의 잠정 예산안을 편성하자는 미국에 일본이 동조하면서 유엔이 재정 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

존 볼턴 유엔주재 미국대사는 최근 “유엔 개혁안과 관련된 예산안이 반영되지 않은 상황에서 현재의 예산안을 통과시킬 수 없다”며 3개월 잠정 예산안 편성 방안을 내놓았다. 사실상 유엔 사무국 조직 슬림화, 유엔 조직 재정비를 골자로 하는 자국의 유엔 개혁안과 유엔 예산을 연계한다는 방침을 분명히 한 것이다. 여기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에 실패한 일본이 유엔 사무국 개혁안을 내놓고 미국에 동조하면서 예산안의 연내 통과에 먹구름이 끼고 있다.

국가별 유엔 분담금 비율 (단위: %)
순위국가비율
미국22.0
일본19.5
독일 8.6
영국 6.1
프랑스 6.0
이탈리아 4.8
캐나다 2.8
스페인 2.5
중국 2.0
멕시코 1.9
한국 1.8
2004년 예산 기준. 자료: 유엔

일본의 강경 입장은 아난 총장이 지난달 30일 일본 정부가 유엔에 대한 재정적 공헌을 안보리 상임이사국 자리와 연계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 것과 무관치 않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관방장관은 아난 총장의 발언이 전해진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일본 국민은 일본이 이만큼 분담금을 내는데 왜 상임이사국이 될 수 없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반발한 바 있다. 두 번째로 많은 유엔 분담금을 낸다는 점을 내세워 유엔 내에서의 발언권 강화를 노린 것으로 풀이된다. 또 미국과 보조를 맞춰 안보리 확대 논의가 재개될 때 미국의 지원을 확보하려는 포석이라는 분석이다.

이에 앞서 아난 총장은 지난달 36억 달러 규모의 2006∼2007년 예산안을 총회에 제출한 뒤 연말까지 이를 처리해 줄 것을 요청한 바 있다. 유엔은 전통적으로 예산을 2년 단위로 편성한다.

유엔 전체 예산의 22.0%를 부담하고 있는 미국과 유엔 분담금을 두 번째로 많이 내고 있는 일본(19.5%)이 공동보조를 취함에 따라 일각에서는 사무처 직원과 유엔 평화유지군의 월급도 주지 못하는 심각한 위기가 올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뉴욕=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

도쿄=박원재 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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