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경제력 너무 커… 마찰 피하려 일왕 환영회견까지”

  • 입력 2005년 6월 28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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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은 물론 현지인과 미군을 위한 위령비에까지 들르면서 어떻게 한국인 희생자를 찾지 않을 수 있습니까.”

김승백(44·사진) 사이판 한인회장은 “한국인 위령비가 일왕 부처 방문 대상에서 제외된 것은 일본의 역사인식이 얼마나 왜곡됐는지를 잘 보여 준다”고 말했다.

현지에서 유통업을 하는 김 회장은 27일 본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일왕 방문 전 사이판 주재 일본영사관에 찾아가 일왕의 한국인 위령비 방문을 요청했지만 영사관 측으로부터 아무런 확답을 듣지 못했다”고 전했다.

일왕 방문을 앞두고 사이판 한인회는 사무실 건물 앞에 ‘일왕은 태평양전쟁 중 희생된 한국인에게 사과하라’는 대형 플래카드를 내걸고 일왕의 한국인 위령비 방문을 요구했다. 한인회의 이 같은 움직임은 ‘사이판 트리뷴’ ‘마리아나 버라이어티’ 등 현지 신문에 대서특필되며 현지 주민들 사이에 한일 역사문제에 대한 관심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김 회장은 “사이판 정부와 관광청으로부터 ‘일왕 방문 문제로 더 이상 시끄럽게 하지 말아 달라’는 압력을 많이 받았다”면서 “마지막으로 천주교 대주교가 플래카드를 떼어 달라고 요청해 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착잡한 목소리로 말했다. 천주교 신자가 97%에 이르는 사이판에서 대주교는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는 “사이판은 일본의 경제권에 속해 있기 때문에 한인회 2500여 명 차원에서 운동을 펼치기는 역부족”이라며 “일부 현지 주민으로부터 ‘한국인들이 일왕 방문 문제로 계속 분란을 일으키면 한인상점 출입을 거부하겠다는 ‘협박’까지 받았다”고 털어놨다.

사이판에서 호텔, 면세점 등 대형 상권은 일본인이 장악하고 있으며 관광객의 70%도 일본인일 정도로 일본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김 회장은 “이곳에 정착한 한인들과 현지인들 사이의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기 위해 ‘일왕의 방문을 환영하고 일왕의 올바른 역사인식을 촉구한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하기도 했다”면서 “일왕의 사이판 방문이 해외 한인들에게 고국의 역사문제에 관심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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