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 3강 美-中-EU 무역전쟁

  • 입력 2005년 6월 2일 03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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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유럽연합(EU) 중국 등 세계 경제 강국 사이에 전운이 고조되고 있다. 아직은 주요 전선이 정부의 항공산업 보조금과 섬유제품 수입규제 논란에 머물고 있으나 다른 품목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다. 반면 무역 갈등의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할 세계무역기구(WTO)는 과부화로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 분쟁 당사국들이 WTO에 제소를 남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EU의 공중전=지난달 30일 미국이 EU를 WTO에 제소했다. EU가 에어버스사의 신기종인 A350을 개발하는 데 150억 달러(약 15조 원)의 보조금을 부당하게 지급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A350은 에어버스사가 개발해 최근 시험비행을 성공리에 마친 차세대 초대형 여객기.

하루 뒤인 31일 이번엔 EU가 미국을 WTO에 맞제소했다. 미국이 1992년부터 지금까지 보잉사에 230억 달러(약 23조 원)의 보조금을 역시 부당하게 지원했다는 주장이었다. 보잉사는 에어버스사의 A350에 맞서 787 드림라이너를 개발하고 있다.

미국과 EU의 에어버스 개발 보조금 삭감 협상은 3월에 일단 결렬됐다. 그 이후 피터 만델슨 EU 통상담당 집행위원은 지난달 27일 로버트 포트먼 미 무역대표부 대표에게 보조금을 3분의 1로 줄이겠다는 새 제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EU 소식통에 의해 이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자 미국이 발끈했다. 두 사람은 감정싸움 양상마저 보이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1일 미국과 EU의 WTO 제소와 맞제소는 역사상 가장 비싼 무역분쟁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WTO의 최종 결론에 따라 수천 개의 일자리, 두 거대 항공기업이 결정적인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중국 대(對) 미국·EU의 섬유대전=보시라이(薄熙來) 중국 상무부장은 지난달 30일 “미국과 유럽은 선진국답게 양말이나 바지에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언성을 높였다. 같은 날 중국 재정부는 81개 섬유제품에 대해 수출관세를 6월 1일자로 폐지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이는 앞서 20일 74개의 자국산 섬유제품의 수출관세를 6월부터 인상하겠다던 발표를 정면으로 뒤집은 것이었다. 중국의 수출관세 인상조치는 지난달 중순 미국과 EU가 잇따라 중국산 섬유제품의 수입규제를 발표한 데 따른 유화적인 움직임이었다.

미국과 EU는 지난해 말 수입할당제가 폐지된 뒤 중국산 섬유제품이 물밀 듯 들어와 자국 섬유산업이 붕괴될 위기에 놓였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특히 미 섬유업계는 18개 공장이 폐업했고 관련 일자리 1만6600개가 사라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칼로스 구티에레즈 미 상무장관과 포트먼 대표는 2일부터 2박3일 일정으로 중국을 방문한다. 이들은 섬유 수출입뿐 아니라 지적재산권 보호문제와 중국의 소프트웨어 수입 확대 등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보 상무부장의 발언은 이들을 향한, 가시 돋친 도전장이었던 셈이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1일 중국과 미국·EU의 섬유전쟁은 전초전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지난해부터 중국산 자동차가 중동지역에 시범 수출돼 선진국 시장을 넘보고 있기 때문. 이 신문은 “10년 뒤에는 중국 자동차제조업체들이 강력한 경쟁자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편 1995년 WTO가 출범한 이후 지금까지 330건의 각종 무역분쟁이 제소됐다. 지난해에만 20건, 올해 들어서도 6건이 제소됐다. 양자 협상이 타결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인 동시에 WTO가 효율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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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진 기자 le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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