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김승련]외면할 수 없는 ‘美 보수주의’

  • 입력 2005년 3월 14일 18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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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공부 때문에 미국 뉴욕에 머무를 때 기자는 미국이란 나라 전체를 리버럴한 곳으로 믿었다. 교회를 외면하는 젊은이들, TV만 틀면 등장하는 동성애자 캐릭터, 개인 선택의 자유를 강조하는 대학 교수들을 보면서 ‘미국은 이런 곳’이라고 쉽게 결론을 내려 버렸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동북부의 뉴욕 시와 남부 텍사스 주의 정서적 차이를 이해하지 못했던 ‘눈 뜬 장님’이었다.

그 뒤 10년. 워싱턴에서 바라본 의사당은 뉴욕과 텍사스가 상징하는 두 세력의 거대한 싸움터였다.

미국 정치의 양극화는 2004년 텍사스 주 선거 결과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연방 하원의원 선거구 32곳 중 7곳에서 사실상 무투표로 당선자가 결정됐다. 막강한 연방 하원의원을 뽑는 선거인데도 공화당이 4곳, 민주당이 3곳에서 후보조차 내지 못했다.

주 상원의원 선거는 더했다. 15개 선거구 중 11곳에서 경쟁이 이뤄지지 않았다. 휴스턴 댈러스 등 대도시는 민주당이 승자였고, 중산층이 사는 대부분의 교외 지역은 공화당이 휩쓸었다.

이런 기현상은 지역별로 유권자 성향이 뚜렷한 탓도 있지만 정치자금 동원 능력이 압도적인 ‘현역 의원’에 맞서 신진 인사가 나설 수 없는 구조 때문이다. 더 직접적으로는 연방 대법원이 “표현의 자유를 막을 수 없다”며 TV 정치광고를 무제한 허용한 탓이다. 이를 두고 미국식 ‘돈 선거’의 폐해로 치부해 버리면 흐름을 잘못 읽는 것이다.

본선이 의미가 없는 선거에서는 후보를 뽑는 정당별 예비경선(primary)이 가장 중요한 정치행사다. 공화당원만의 경선에선 ‘가장 공화당다운’ 후보가 선출되고 민주당 텃밭에선 ‘가장 진보적 후보‘가 공천 받을 공산이 크다. 워싱턴과 주 의사당은 이렇게 뽑힌 보수와 진보의 전사들이 득실댄다. 중간지대는 허용되지 않는다. “세계 (45개) 독재정권을 2025년까지 뿌리 뽑겠다”는 야심만만하면서도 오만한 법안이 제출되는 판국이다.

미 의회를 지배하는 또 다른 현상은 텍사스 플로리다 애리조나 등 남부 주 인구의 증가에 따른 남부지역 보수정치의 영향력 확대다. 집권당인 공화당의 원내총무가 상원(테네시 주) 하원(텍사스 주) 모두 남부에서 나온 이유가 여기서 설명된다.

이런 이유에서 미국의 전반적인 보수화, 정치적 양극화 때문에 의사당에서 더욱 격렬하게 표현될 보수적 정책, 더욱 높아지는 남부 정치의 비중과 파장을 파악하는 일은 절실하다.

한국은 1990년대 말 이후 미국식 보수주의와는 사뭇 반대의 길을 걸어 왔다. 한국의 젊은 세대는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 공화당, 그리고 성경 말씀만을 삶의 좌표로 삼는 복음주의적 보수주의자들을 ‘수준 미달’로 치부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 TV와 라디오를 틀고, 인터넷에 접속하면 그 현장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진부한 이야기지만, 미국의 존재를 넘어서서 한국의 미래를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미국의 보수주의가 옳고 바람직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적어도 “그들은 원래 꼴통이니까”라며 연구 자체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김승련 워싱턴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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