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권순택]한국국민 파고드는 美외교

  • 입력 2005년 3월 21일 19시 00분


코멘트
지난해 9월 16일 광주 운정동 국립 5·18묘지에 크리스토퍼 힐 주한 미국대사 부부가 조용히 나타나 참배했다.

힐 대사의 방문은 사적인 형식을 취한 데다 일정도 미리 공개되지 않았다. 그러나 힐 대사가 다녀가고 약 2시간 뒤 한 인터넷신문은 힐 대사 부부의 묘지 방문을 사진들과 함께 상세히 보도했다.

힐 대사가 방명록에 남긴 “용감한 희생자들을 추도하기 위해 깊은 존경심과 슬픔을 안고 이곳에 왔다”는 글도 공개됐다.

한국 대중을 겨냥한 미국의 대국민 외교(Public Diplomacy) 일면을 보여준 힐 대사의 참배는 미국에 비판적인 사람들에게도 별로 나쁜 인상을 주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에 호의적이지 않은 그 인터넷신문은 알려지지 않을 수도 있었던 힐 대사의 참배를 보도함으로써 본의 아니게 미국을 홍보해 준 셈이 됐다.

전 세계적으로 반미 감정이 확산되면서 외교정책 수행에 어려움을 겪어 온 미국은 대국민 외교에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자신의 분신으로 불리는 캐런 휴스 전 백악관 공보보좌관을 국무부 대국민외교 담당 차관에 지명한 것은 대국민 외교를 얼마나 중시하는지를 잘 보여 준다.

다른 나라 국민을 상대로 자국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문화, 언어, 역사에 대한 호감을 사기 위한 대국민 홍보 외교는 물론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힐 대사가 지난해 8월 이후 한국에서 보여 준 대국민 외교 활동은 놀라울 정도였다고 평가하는 사람이 많다.

공개 강연과 각계각층 사람들과의 활발한 접촉 및 언론을 통한 솔직한 메시지 전달, 그리고 인터넷 채팅 등은 상당한 효과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사로 부임한 지 7개월 만에 국무부 아시아태평양지역 담당 차관보에 기용된 것은 이를 뒷받침하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미국의 대국민 외교는 정부를 상대로 하는 외교의 한계를 보완하고 일반 대중과 직접 소통함으로써 미국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변화시켜 보겠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미국과 코드가 맞지 않는 한국 정부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대국민 외교 강화의 배경이 된 것으로 보고 있다.

불편한 한미관계 때문인지 한국 정부도 미국에서의 대국민 외교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북한보다 미국이 한국에 더 위협적이라는 최근 국내 여론조사 결과에 많은 미국인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국에서의 반미감정의 배경과 원인을 제대로 이해하는 미국인도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언론사 사주를 미 언론과 싱크탱크에 지인이 많다는 이유로 주미 한국대사에 임명한 것은 그런 현실을 인정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대사의 발언이나 활동이 주요 뉴스가 되는 한국과, 한국대사의 영향력이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미국의 차이를 어떻게 극복할지는 과제로 남아 있다.

게다가 최근 미 하원 의원의 의회 발언을 한국의 장관이 국내 정치용으로 해석될 소지가 충분한 방식으로 거칠게 대응한 것은 한국에 대한 미국인들의 부정적인 인식이나 오해를 해소하는 데에 무슨 도움이 될지 생각해 봐야 할 일이다.

권순택 워싱턴 특파원 maypol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