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레바논 주둔軍 전면 철수”

  • 입력 2005년 2월 25일 18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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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14일 지중해 해안도시인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 오후 1시경 해안도로에서 강력한 폭탄이 터지면서 14명이 사망하고 100여 명이 부상했다. 라피크 하리리 전 레바논 총리를 겨냥한 암살테러였다.

야당과 시민 수만 명은 즉각 시리아가 폭탄 테러의 배후라며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미국과 유엔 등 국제사회의 비난도 시리아에 집중됐다.

이 압력에 시리아는 결국 30년 가까이 레바논에 주둔시켰던 군대를 철수키로 24일 결정했다. 폭탄 테러로 숨진 하리리 전 총리는 살아있을 때보다 더 위대한 업적을 남긴 셈이 됐다.

▽30년 섭정의 끝=시리아 외무부는 24일 성명을 내고 “타이프 협정에 따라 레바논에 주둔 중인 병력 1만4000명을 모두 철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타이프 협정은 1989년 레바논 정치 형태를 확정짓고 시리아 군이 철수하도록 규정한 ‘국민화합헌장’이다.

시리아는 레바논 내전(1975∼1990년)을 진화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1976년 레바논에 군을 진입시켰고, 현재도 1만4000여 명의 군대를 주둔시키며 친(親)시리아 정권에 영향력을 발휘해 왔다.

미국 LA타임스는 20일 “시리아의 영향력은 레바논 의회와 대통령 집무실, 금융권 등 거의 모든 기관에 조용하게 스며들었다”며 “이는 친 시리아 성향의 레바논 정부가 시리아 군의 주둔을 외국 점령으로 보지 않고 당연한 일로 여겼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하리리 사망의 영향력=하리리 전 총리 암살사건은 현 정권 붕괴의 출발점이 되고 있다. 레바논 야당 인사들은 사건 직후 반(反)시리아 ‘인티파다(무장봉기)’를 선언하며 친시리아 정권의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

이집트와 사우디아라비아, 알제리 등 인근 아랍 국가들까지 시리아 철군에 공감하면서 시리아는 설 자리를 잃고 말았다. 코피 아난 유엔사무총장도 24일 아랍어 위성방송 알 아라비야와의 인터뷰에서 “올 4월까지 레바논에서 철군하라”며 “그렇지 않으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시리아를 회부해 조치를 취하겠다”고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결국 시리아는 철군 방침을 결정했고, 레바논 정부도 계속 거부해 오던 폭탄테러에 대한 국제사회의 조사를 받아들이기로 태도를 바꿨다.

▽바뀌는 중동=토머스 프리드먼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는 하리리 전 총리의 사망 이후 레바논 국민들이 정부에 대항하는 모습을 ‘예전에 볼 수 없던 행동’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레바논 국민들의 용기를 포함해 저항세력의 위협을 극복한 이라크와 팔레스타인 선거, 5선을 노리는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에 맞서 대선 후보로 나선 이집트 정치인 등을 예로 들며 중동의 민주화 가능성을 제시했다.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시리아-레바논 관계▼

시리아의 일부였던 레바논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의 위임통치령을 받다 1944년 분리 독립했다.

그러나 레바논에는 마론파 기독교, 아르메니아 기독교, 그리스정교, 그리스 가톨릭, 수니파 및 시아파 이슬람 등 다양한 집단이 섞여 있어 분쟁의 씨앗이 됐다. 완전한 독립국가를 만들려는 기독교 세력과 아랍주의를 주창하는 아랍세력이 대립했다.

1958년 기독교 세력의 샤문 대통령이 친서방 정책을 펴자 이슬람 세력이 반발하면서 내전이 촉발됐다. 이어 1972년 레바논 베이루트에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가 본부를 설치하자 정부가 이를 탄압했고, 이스라엘이 대규모 침공을 벌이면서 내전은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됐다.

1976년 시리아가 내전 수습을 명분으로 3만5000여 명의 군대를 투입하면서 내전은 제3국의 대리전으로 비화됐다. 1990년 무장 민병대가 모두 정부군에 투항하면서 15년에 걸친 내전은 막을 내렸다. 이때 기독교 마론파와 이슬람교 수니파의 민병대 조직 지도자들이 참여하는 거국내각이 출범했지만 다양한 종파를 대변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시리아는 평화유지를 명분으로 군대를 계속 주둔시키면서 레바논 정치를 좌우했다. 시리아는 아직도 레바논을 자국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다.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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