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승련]‘아마겟돈 美대선’

  • 입력 2004년 11월 1일 18시 14분


코멘트
2004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한마디로 ‘아마겟돈 선거’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세계의 종말을 맞아 선과 악이 최후의 결전을 치른다는 성경의 아마겟돈 전쟁 이야기에 빗댄 것이다.

너무 심한 비유라는 생각도 들지만,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낙선하면 마치 지구의 종말이라도 올 것처럼 싸우는 오늘의 미국 사회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것 같기도 하다.

정작 걱정되는 것은 당장의 선거 결과보다는 ‘선거 이후’다. 원래 선거라는 게 그러려니 하기엔 미국의 선거는 너무 중요하다. 미국의 리더십이 건강해야 세계질서도 건강해진다.

그러나 ‘미국적 리더십’의 권위를 지탱해 오던 미국 사회 중추그룹의 이미지가 이번 선거를 계기로 망가질 대로 망가진 듯한 모습이다.

지난달 31일 오전 웬디 셔먼 전 미 국무부 대북조정관이 TV에 출연해 테러 전문가와 논쟁을 벌였다. 냉철한 외교관으로 평가받아 온 그다. 그는 “어쨌건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전쟁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고 비난했다. 민주당의 논리였다.

공화당 대변자로 나선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도 마찬가지였다. 합리적 의사결정과 포용력으로 피부색 언어 종교가 다른 뉴요커를 하나로 묶어 내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미국적 리더십의 건강을 유지해 준 또 하나의 축은 언론이었다.

그러나 뉴욕타임스, CNN 등 유력한 신문과 방송의 선거보도 방식도 한국에서 평소 느끼던 권위와는 거리가 있다. 사설로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것은 미국 언론의 관행으로 이해한다 해도 기사 선택, 사진 배치에서조차 미묘한 당파성이 느껴진다.

이전투구 선거전의 최대 피해자는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존 케리 후보일지 모른다.

선거를 아마겟돈 전쟁으로 생각하는 한 절반의 유권자는 새 당선자를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최후의 결전에서 악이 승리했다고 절망할지도 모른다.

이번 선거에서는 ‘국내에서 강하고, 국제적으로 존경받는 미국’이라는 캐치프레이즈도 나왔다. 하지만 아마겟돈 전쟁에서 승리한 악이 국제적으로 존경받는 미국을 재건할 수 있을까.

미국의 리더십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한국을 생각하면 가슴이 무거워진다.

워싱턴=김승련특파원 srki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