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박원재/일본판 北風

  • 입력 2004년 7월 7일 18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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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의원 선거(11일)가 임박한 일본에서 요즘 정치권의 관심은 온통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쏠려 있다. 결선투표까지 갈 것으로 보이는 인도네시아 대통령선거 결과가 궁금해서가 아니다. 납북됐다 돌아온 소가 히토미가 북한에 두고 온 주한미군 탈영병 출신의 남편 찰스 젠킨스와 두 딸을 9일 이곳에서 만나기 때문이다. 일본 언론들은 ‘자카르타발(發) 북풍(北風)’이 선거판세를 좌우할 최대변수가 될 것이라고 전한다.

▽참의원 선거전은 연금법 강행처리와 자위대의 이라크 파병 등 악재가 겹치면서 자민당이 고전하는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현 정권의 지지율은 한 달 사이에 10%포인트 이상 떨어졌다. 이번에 새로 뽑는 121석 중 현재의 자민당 의석인 51석조차 건지기 힘들다는 전망이 퍼지면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실각을 점치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궁지에 몰린 고이즈미 총리는 소가씨 일가의 재회 이벤트를 비장의 카드로 뽑아들었다. 상봉 시기를 선거 직전으로 앞당기려는 일본정부의 계획에 북한도 적극 협력했다. 호소다 히로유키(細田博之) 관방장관은 “북한이 도와준 덕택에 예상보다 빨라졌다”며 이례적으로 고마움을 표시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자민당 총재 임기인 2006년 9월 안에 북-일 수교협상을 마무리 짓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혔다. 일본의 경제지원이 절실한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으로선 파트너가 바뀌지 않는 편이 유리하다고 판단했음직하다. 그런 점에서 ‘일본판 북풍’은 두 차례 회담으로 얼굴을 익힌 양국 정상의 합작품인 셈이다. 야당은 ‘의도가 불순한 깜짝쇼’라고 비판하면서도 처음 접하는 ‘북풍’의 위력이 어느 정도일지 긴장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한국의 선거 때마다 단골메뉴로 등장한 ‘북풍’이 바다 건너 일본에까지 부는 걸 보면 북한은 선거영향력에 관한 한 ‘강성대국(强盛大國)’이다. 일본에서 효과를 낸다면 북한 지도부는 11월의 미국 대선에도 변수가 되려는 충동을 가질지 모른다. 북한이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재선을 바라지 않는다면? 핵개발, 미사일실험 등으로 국제사회에 분쟁의 불씨를 만들지 말고 조용히 있는 게 최상의 전략이 아닐까.

도쿄=박원재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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