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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5월 17일 18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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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간 논의의 방식도 우려를 가중시킨다. 정부는 미군 차출규모와 시기 등에 관해 한미간에 협의를 하고 있다고 밝혔으나 미국이 세운 계획의 골격을 바꾸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사실상 ‘일방적 통보’로 볼 수밖에 없다. 미국이 한미 양국의 필요성에 따라 주둔하고 있는 미군을 일방적으로 차출하기로 한 것은 한미동맹관계에 중대한 문제가 있다는 신호나 마찬가지다. 2주 전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이 주한미군의 차출 가능성을 시사했을 때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은 정부의 태도도 석연치 않다.
만에 하나 늦어지고 있는 이라크 파병, 미군기지 이전에 대한 일부 국민의 반감, 점증하는 반미의식 등이 주한미군 차출에 영향을 미쳤다면 사태는 심각하다. 점점 악화되는 이라크 사태를 안정시키기 위해 추가병력이 절실한 미국의 입장을 헤아리기는 어렵지 않다. 우리가 약속한 추가파병을 계속 미루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미간의 시각차가 주한미군 차출을 초래한 것은 아닌지 검증해볼 때가 됐다.
한미동맹관계의 문제보다는 미국의 변화된 전략차원에서 미군차출을 보아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정부 고위당국자는 “미국은 해외주둔군의 역할변화와 재배치계획에 따라 주한미군을 차출하려 하고 있으며 우리의 이라크 파병을 압박하려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유럽주둔 미군과 주일미군도 이라크에 투입됐기 때문에 주한미군 차출에 대해 과도한 불안을 느낄 이유는 없다는 분석도 있다. 미국은 필요한 지역에 미군을 파병했다가 주둔지로 복귀시키는 이른바 ‘전략적 유연성’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주한미군의 복귀만 보장된다면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그런 차원에서 미국이 병력을 차출하려 한다면 주한미군에 대한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주한미군을 대북억제력 차원에서 볼 것인지, 지역안보군으로 볼 것인지 우리의 입장을 정리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변화된 전략을 구사하는 미군에 적절히 대응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시각도 변해야 한다.
정부는 모든 변수를 고려해 최선의 수습을 해야 한다. 주한미군 없이 자주국방을 할 자신이 있다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면 한미공동으로 주한미군 차출 또는 감축에 따르는 안보불안을 해소할 방안을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 가령 첨단무기의 한반도 주변 배치는 미군 차출로 인한 전력공백을 신속하게 메울 수 있는 대책이다.
이라크 파병문제도 차제에 매듭지어야 한다. 지금은 거리의 목소리에 영향 받아 한미관계를 결정할 때가 아니다. 현실을 인정하고 냉정하게 대응해야 한다. 한미가 어떤 논의를 하고 있는지 가능한 한 공개하는 것도 국민 불안을 줄이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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