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20일 총통선거]“대륙파”“토종파” 나라가 두 쪽

  • 입력 2004년 3월 18일 18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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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통 후보들 모두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전엔 안 그랬는데 할머니는 갈수록 심술궂어지고 엄마는 날마다 울기만 한다. 아빠는 점점 집에 늦게 돌아온다. 나는 선거가 제일 싫다.”

타이베이(臺北)의 한 초등학교 2학년생이 대만 총통선거를 주제로 국어시간에 쓴 작문이 국민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대륙 출신의 와이성런(外省人) 집안에서 태어난 이 학생의 할머니는 골수 국민당 지지파이고 엄마는 대만 출신인 번성런(本省人)으로 민진당을 적극 옹호하고 있다.

“할머니와 엄마는 날마다 TV 채널을 갖고 싸우고 지지하지 않는 사람이 나오면 이를 악물고 욕을 해댄다.” 어린 학생의 눈에는 단란했던 가정을 하루아침에 깨뜨려 버린 선거가 마냥 밉기만 한 행사가 돼버렸다.

선거의 핵심 쟁점인 국민투표가 지역갈등으로 이어지면서 대만에는 과거 볼 수 없었던 심각한 사회적 분열상이 나타나고 있다. 갈등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는 쪽은 집권 민진당이다.

민진당은 “외래 정권인 국민당을 지지하는 것은 대만을 중국에 팔아먹는 것”이라면서 번성런이 일치단결해 이를 저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심지어 대만 외교부는 최근 해외 화교들에게 배포한 ‘2004 대만의 선택’이라는 책자에 ‘대만은 중화민국 군대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연합군 자격으로 점령한 것’이라는 내용을 실어 야당과 지식인들의 공격을 받고 있다.

야당인 국민당은 번성런의 마음을 붙잡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13일 320만명을 동원한 ‘환볜, 추타이완(換扁, 救臺灣·천수이볜(陳水扁)을 바꿔 대만을 구하자)’ 행사에서 롄잔(連戰) 후보가 대만을 사랑한다는 의미로 땅에다 입을 맞춘 사진을 주요 일간지에 전면 광고로 내보내기까지 했다.

‘네거티브 선거전략’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 심화되면서 최근 대만 ‘생명의 전화’와 대학 부설병원 정신과에는 가정불화, 강박증, 불면증, 식욕부진 등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

주카이위(朱開玉) 타이베이시 생명협회 총간사는 “선거 결과보다는 후유증이 더 걱정”이라면서 “선거 과정에서 나타난 사회적 분열은 한동안 치유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D-2 표정=“거허우잔(割喉戰·적의 목을 베어야 이기는 치열한 육박전), 거허우잔!”

선거를 이틀 앞둔 18일 타이베이의 한 컴퓨터업체에 다니는 허우원승(候文勝·42)은 “정말 선거 결과를 가늠하기 어렵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신저신, 부신저부신(信者 信, 不信者不信·믿는 것은 더 믿고 믿지 않는 것은 더 안 믿는다) 양상이 심각하다”고 말했다. 지지 정당의 말은 무조건 믿고 반대 정당의 말은 아예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민진당의 천수이볜-뤼슈롄(呂秀蓮) 정·부총통 후보는 이날 “중국의 미사일 위협과 국민당의 검은돈으로부터 대만을 구하자”며 표를 호소했다. 민진당은 유세 마지막날인 19일에는 타이베이-타오위안(桃園)-타이중(臺中)-가오슝(高雄) 등 남북을 잇는 4대 도시에서 오후 8시8분8초에 맞춰 100여만명이 발광체를 점멸하는 대규모 군중대회를 열어 막판 세몰이를 할 계획이다.

국민당의 롄잔, 친민당의 쑹추위(宋楚瑜) 정·부총통 후보진영은 “지역갈등을 타파하고 번영된 대만을 만들자”며 18일 오전 타이베이 유세에 이어 오후엔 민진당의 아성인 타이난(臺南)과 가오슝을 공략했다. 롄잔 후보는 선거용으로 임대한 보잉 747 여객기를 타고 가오슝으로 내려갔다 올 만큼 강행군을 계속하고 있다.

▽도박판의 예상=도박판의 열기도 뜨겁다. 경찰 추산에 따르면 대만 전역에서 이번 선거 결과에 걸려 있는 판돈은 무려 13억대만달러(약 500억원)를 넘는다. 도박에 거는 기본 판돈은 1만대만달러(약 40만원). 도박판의 예상은 롄잔 후보의 승리로 나타나고 있다.

타이베이=황유성특파원ys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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