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戰 1년]<上>미국의 대차대조표

  • 입력 2004년 3월 17일 18시 48분


《“미군과 연합군은 이라크 국민을 해방하고 세계를 위협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광범위한 공격의 초기 단계에 돌입했다.” 2003년 3월 20일. 아라비아해와 홍해상의 미 항공모함에서 발사된 토마호크 미사일이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를 폭격하는 순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이라크전쟁 개전의 명분을 이렇게 규정했다. 9·11테러 이후 부시 행정부가 주장해 온 ‘선제공격원칙(Pre-emptive strike)’의 첫 역사적 등장이었다. 세계 37개국이 미국의 요청으로 파병에 동참했다. 그로부터 1년 뒤. 이라크는 여전히 테러로 지새고 있고 주요 파병국인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서는 폭탄테러로 17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라크전쟁 1년을 3회 시리즈로 조망한다.》

지난해 12월 13일. 미국은 이라크전쟁에서 ‘모든 것’을 얻은 듯 의기양양했다. 개전 8개월23일 만에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을 체포한 것이다.

프랑스 독일 등 반전국들의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고 이라크와 함께 대표적 ‘불량국가’로 꼽혔던 리비아는 대량살상무기(WMD) 해체를 선언하며 ‘팍스 아메리카나’의 깃발 아래 무릎을 꿇었다.

▼관련기사▼

- <中>세계로 퍼지는 테러
- <下>또다른 명분 ‘민주주의’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실패했던 러시아의 전철을 가볍게 뛰어넘으며 세계 유일 초강대국의 위상을 확고히 굳혔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그러나 얻은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 호언장담했던 WMD 발견에 실패하면서 미국의 전쟁명분은 퇴색했다. 이라크전 1주년을 앞두고 터진 스페인 마드리드 열차 폭탄테러는 또다시 세계를 테러의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이라크 민주화도 험난해 보인다.

‘얻은 것은 송유관이요, 잃은 것은 평화’라는 극단적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얻은 것=미국은 개전 41일 만에 이라크를 점령하는 엄청난 군사력을 과시했다. 프랑스 러시아 중국 등 잠재적 경쟁국들이 중동지역에 갖고 있던 정치적 주도권도 사실상 독차지했다. 개전 과정에서 유럽의 우방 프랑스와 독일은 등을 돌렸지만 폴란드 루마니아 같은 동유럽국가와 그루지야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등 북카프카스 국가들, 그리고 중앙아시아국가들을 신흥동맹국으로 얻었다.

한국국방연구원 김재두(金載斗) 박사는 “미국은 이라크전을 통해 유럽 중동 중앙아시아 파키스탄을 잇는 거대한 ‘친미 벨트’를 건설해 에너지 패권을 확보했으며 중국 러시아를 견제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뒀다”고 분석했다.

바그다드 북쪽 바이지 지역에서 이라크 북부 키르기스 유전과 터키의 지중해 석유기지 제이한을 연결하는 송유관을 확보했다.

한국이슬람문화연구소 이원삼(李元三) 소장은 “미국은 안정적인 원유물량 확보로 특정 국가에 대한 수입의존도를 줄였을 뿐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중동산 원유가격 인하와 같은 다양한 경제적 이득을 얻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라크전쟁에 참여했다가 퇴역한 미군과 사망한 군인 가족 100여명이 16일 미 백악관 부근에서 “우리 아들들의 피가 이라크의 석유보다 소중하다”고 쓰인 피켓을 들고 전쟁 종식과 철군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워싱턴=신화 연합

▽잃은 것=2001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 컬럼비아대 교수는 “미국은 이라크전에서 군사적 승리를 쟁취한 것 말고는 온통 실수투성이다”고 혹평했다.

무엇보다도 전쟁 명분이었던 이라크의 WMD는 ‘부메랑’처럼 미국의 도덕성에 상처를 남겼다. ‘유럽의 9·11’로 불리는 스페인 마드리드 열차 폭탄테러는 ‘테러로부터 세계를 보호한다’는 미국의 호언장담을 뿌리째 흔들었다.

이라크 철군을 공약으로 내걸고 총선에서 승리한 호세 루이스 로드리게스 사파테로 스페인 사회노동당 당수는 “이라크전은 재앙이었고, 이라크 점령은 더 큰 재앙이 될 것”이라면서 “이라크전은 더 많은 폭력과 증오만을 낳았다”고 말했다.

로마노 프로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16일 “미국이 주도한 테러와의 전쟁은 실패했다”고 단언했다.

미 군사대학의 제프리 리코드 교수는 “경제제재 등으로 이라크를 컨트롤할 수 있었으나 불필요한 예방전쟁을 일으켜 새로운 테러전선을 만들어준 것은 전략적 오류”라고 비판했다.

▽도전받는 팍스 아메리카나=중국 러시아 등이 미국의 힘에 위협을 느껴 군사력 증강에 나선 것도 이라크전과 무관치 않다.

러시아는 지난해 8월 카스피해에서 육해공군 2만여명이 동원된 대규모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옛 소련 시절에도 없었던 일이다. 지난달에는 미국이 추진 중인 미사일방어(MD)체제를 뚫을 신형미사일을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중국은 미국에서 제기돼온 ‘중국 위협론’을 의식해 14년 만에 처음으로 한 자릿수(9.6%)로 낮췄던 국방비 증가율을 1년 만에 다시 두 자릿수(11.6%)로 올렸다.

김 박사는 “1991년 걸프전과 이라크전을 통해 미국과의 군사력 차이를 확인한 이들 국가의 위기의식이 빚은 결과”라고 분석했다.

전통적인 대서양 동맹에도 금이 갔다. 미국 카네기재단의 로버트 케이건 수석연구원은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즈 3, 4월호에서 “좋든 싫든 미국의 이해관계는 유럽과 연계돼 있다는 사실을 미국이 잘 알아야한다”고 지적했다.

이호갑기자 gdt@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