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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3월 9일 18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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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의 아들’과 ‘태자당’=4년 전 대만 최초의 정권 교체를 이룬 천수이볜 총통과 국민당 명문가의 후손인 롄잔 주석은 출신과 경력 차이만큼이나 선거공약과 지지층에서도 확연하게 갈린다.
대만 남부 타이난(臺南)에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난 천 총통은 어린시절 방 벽에 새까맣게 적힌 빚장부를 보며 자랐다. 초등학교만 졸업한 아버지는 술꾼이었고 초등학교를 중퇴한 어머니는 방직공장 종업원이었다. 빚을 얻지 않으면 학교를 다닐 수 없었다. 돈을 벌기 위해 대만대 상과에 입학했으나 황신제(黃信介) 전 민진당 주석의 국민당 공격 연설에 감화돼 법과로 옮겨 3학년 때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수재다. 반정부 잡지인 ‘메이리다오(美麗島·대만의 별칭)’의 필화사건으로 투옥된 황 전 주석의 변호를 맡으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반면 롄 주석은 산시(陝西)성 시안(西安) 출신으로 열 살 때 대만으로 옮겨왔다. ‘대만 통사’를 집필한 사학자인 조부와 재정부장을 지낸 국민당 원로를 부친으로 둔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17세 때 미국 유학길에 올라 시카고대에서 ‘올A’의 뛰어난 성적으로 2년 만에 외교학 석사를 따내고 곧 정치학박사까지 받았다. 귀국 후 모교인 대만대에서 정치학 교수로 있다가 국민당에 입당해 교통부장 외교부장 행정원장 부총통 등 화려한 출세가도를 달렸다.
▽독립노선과 현실주의 노선의 충돌=천 총통은 양국론(兩國論·중국과 대만은 별개의 국가)을 내세운 리덩후이(李登輝) 전 총통의 ‘이념적 적자’로 불린다. 대만 출신의 ‘본성인(本省人)’으로 불리는 이들은 대만이 독자적인 생존공간을 찾지 못하면 언젠가 중국에 함몰돼 버릴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이런 인식 아래 천 총통이 2002년 8월 내세운 것이 ‘일변일국론(一邊一國論·양안은 별개의 국가)’. 이는 지난해 11월 ‘제헌건국 전쟁론’으로 이어졌다.
천 총통은 “재집권하면 2006년 대만 독립을 위한 새 헌법 초안을 마련해 2007년 국민투표를 거쳐 2008년부터 실시하겠다”면서 “중국의 무력동원은 제헌 건국을 위한 ‘성전(聖戰)’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번에 총통선거와 함께 실시되는 중국의 미사일 위협 제거를 위한 국민투표도 대만 독립을 향한 전 단계라는 것이 일반적 관측이다.
반면 대륙에서 태어난 롄 주석은 대만 독립은 본토 수복을 포기하는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따라서 양안 관계의 안정이 대만에 도움이 된다는 현실주의 노선을 추구한다.
롄 주석은 “국민투표 실시는 대만 국민을 전쟁의 위험에 빠뜨리는 것”이라며 양안 대화의 제도화와 해운 항공 직항 등 ‘양안 평화 신로드맵’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지지층 양극화=천 총통의 지지층은 대만 출신들이다. 이들은 반세기 동안의 국민당 집권 기간 중 소외됐다는 뿌리 깊은 불만을 갖고 있다. 특히 토박이 대만 출신들이 많은 남부 지방에 천 총통의 지지층이 집중돼 있다. 동질감을 느끼는 서민들과 개혁을 바라는 젊은 학생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온건 성향의 롄 주석은 장제스(蔣介石) 국민당 정권이 중국에서 대만으로 패퇴했을 때 옮겨온 외성인(外省人)들로부터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안정을 희구하는 보수 기득권 세력이다. 또 양안 경제관계 악화를 우려하는 재계도 롄 주석의 당선을 돕고 있다.
베이징=황유성특파원 yshwang@donga.com
▼선거 핫 이슈▼
올해 대만 총통선거가 관심을 끄는 것은 함께 실시되는 국민투표 때문이다. 표심의 향방도 이에 좌우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국민투표의 의제는 두 가지. 중국의 미사일 위협에 맞선 방위능력 증강과 양안 대화에 나서는 데 찬성하느냐를 묻는 것.
천수이볜 총통은 “국민투표는 대만의 주권과 존엄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면서 ‘1○○’ 운동을 벌이고 있다. 총통선거에서는 1번(천 총통)을 찍고 국민투표의 2개 의제에 대해서는 모두 ○표를 찍어달라는 것이다.
천 총통이 국민투표 카드를 들고 나온 것은 2000년 총통선거 때 효과를 보았던 ‘중국 위협론’을 다시 불러일으켜 유권자들의 위기의식을 자극해 표로 연결하자는 속셈이 크다. 재집권에 실패하더라도 국민투표 결과에 따른 독립론을 내세워 롄 정권을 압박하려는 노림수도 깔려 있다.
이에 맞서 롄 주석은 ‘국민투표 보이콧’ 운동을 펴고 있다. 국민투표 참가율을 50% 밑으로 끌어내려 국민투표 자체를 무산시키겠다는 전략이다. 국민당 소속인 마잉주(馬英九) 타이베이(臺北) 시장은 시민에게 국민투표 불참을 호소하고 있다.
60% 이상이 국민투표 실시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최근 여론조사 결과도 롄 주석 진영을 고무시키고 있다.
중국은 국민투표 강행을 대만 독립을 향한 포석으로 보고 격렬히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선거 때 대만해협에서 미사일 발사 훈련을 하는 등 강공책을 편 것이 역효과를 냈다는 판단 때문에 겉으로 드러나는 군사적 움직임은 자제하고 있다. 대신 대만해협의 안정을 원하는 미국 등 국제사회로부터 국민투표 반대 여론을 이끌어 내는 외교적 압박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베이징=황유성특파원 ys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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