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로 보는 대만 총통선거]<1>천수이볜과 롄잔

  • 입력 2004년 3월 9일 18시 44분


《‘수성(守城)이냐, 정권 재탈환이냐.’ 대만 총통선거가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20일 실시될 이번 선거는 2000년에 51년 장기 집권한 국민당 정권을 무너뜨린 민진당의 천수이볜(陳水扁) 총통과 4년간 절치부심해온 롄잔(連戰) 국민당 주석간의 재대결이다. 현재 두 후보는 1∼2% 포인트 안팎의 예측을 불허하는 혈투를 벌이고 있다. 이번 선거는 천 총통의 ‘대만 독립노선’에 대한 유권자들의 표심과 중국의 반응이 뒤얽혀 국제적인 관심을 끈다. 양 진영의 핵심 인물들을 통해 선거의 향방을 4회 시리즈로 짚어본다.》

▽‘대만의 아들’과 ‘태자당’=4년 전 대만 최초의 정권 교체를 이룬 천수이볜 총통과 국민당 명문가의 후손인 롄잔 주석은 출신과 경력 차이만큼이나 선거공약과 지지층에서도 확연하게 갈린다.

대만 남부 타이난(臺南)에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난 천 총통은 어린시절 방 벽에 새까맣게 적힌 빚장부를 보며 자랐다. 초등학교만 졸업한 아버지는 술꾼이었고 초등학교를 중퇴한 어머니는 방직공장 종업원이었다. 빚을 얻지 않으면 학교를 다닐 수 없었다. 돈을 벌기 위해 대만대 상과에 입학했으나 황신제(黃信介) 전 민진당 주석의 국민당 공격 연설에 감화돼 법과로 옮겨 3학년 때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수재다. 반정부 잡지인 ‘메이리다오(美麗島·대만의 별칭)’의 필화사건으로 투옥된 황 전 주석의 변호를 맡으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반면 롄 주석은 산시(陝西)성 시안(西安) 출신으로 열 살 때 대만으로 옮겨왔다. ‘대만 통사’를 집필한 사학자인 조부와 재정부장을 지낸 국민당 원로를 부친으로 둔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17세 때 미국 유학길에 올라 시카고대에서 ‘올A’의 뛰어난 성적으로 2년 만에 외교학 석사를 따내고 곧 정치학박사까지 받았다. 귀국 후 모교인 대만대에서 정치학 교수로 있다가 국민당에 입당해 교통부장 외교부장 행정원장 부총통 등 화려한 출세가도를 달렸다.

▽독립노선과 현실주의 노선의 충돌=천 총통은 양국론(兩國論·중국과 대만은 별개의 국가)을 내세운 리덩후이(李登輝) 전 총통의 ‘이념적 적자’로 불린다. 대만 출신의 ‘본성인(本省人)’으로 불리는 이들은 대만이 독자적인 생존공간을 찾지 못하면 언젠가 중국에 함몰돼 버릴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이런 인식 아래 천 총통이 2002년 8월 내세운 것이 ‘일변일국론(一邊一國論·양안은 별개의 국가)’. 이는 지난해 11월 ‘제헌건국 전쟁론’으로 이어졌다.

천 총통은 “재집권하면 2006년 대만 독립을 위한 새 헌법 초안을 마련해 2007년 국민투표를 거쳐 2008년부터 실시하겠다”면서 “중국의 무력동원은 제헌 건국을 위한 ‘성전(聖戰)’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번에 총통선거와 함께 실시되는 중국의 미사일 위협 제거를 위한 국민투표도 대만 독립을 향한 전 단계라는 것이 일반적 관측이다.

반면 대륙에서 태어난 롄 주석은 대만 독립은 본토 수복을 포기하는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따라서 양안 관계의 안정이 대만에 도움이 된다는 현실주의 노선을 추구한다.

롄 주석은 “국민투표 실시는 대만 국민을 전쟁의 위험에 빠뜨리는 것”이라며 양안 대화의 제도화와 해운 항공 직항 등 ‘양안 평화 신로드맵’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지지층 양극화=천 총통의 지지층은 대만 출신들이다. 이들은 반세기 동안의 국민당 집권 기간 중 소외됐다는 뿌리 깊은 불만을 갖고 있다. 특히 토박이 대만 출신들이 많은 남부 지방에 천 총통의 지지층이 집중돼 있다. 동질감을 느끼는 서민들과 개혁을 바라는 젊은 학생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온건 성향의 롄 주석은 장제스(蔣介石) 국민당 정권이 중국에서 대만으로 패퇴했을 때 옮겨온 외성인(外省人)들로부터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안정을 희구하는 보수 기득권 세력이다. 또 양안 경제관계 악화를 우려하는 재계도 롄 주석의 당선을 돕고 있다.

베이징=황유성특파원 yshwang@donga.com

▼선거 핫 이슈▼

올해 대만 총통선거가 관심을 끄는 것은 함께 실시되는 국민투표 때문이다. 표심의 향방도 이에 좌우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국민투표의 의제는 두 가지. 중국의 미사일 위협에 맞선 방위능력 증강과 양안 대화에 나서는 데 찬성하느냐를 묻는 것.

천수이볜 총통은 “국민투표는 대만의 주권과 존엄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면서 ‘1○○’ 운동을 벌이고 있다. 총통선거에서는 1번(천 총통)을 찍고 국민투표의 2개 의제에 대해서는 모두 ○표를 찍어달라는 것이다.

천 총통이 국민투표 카드를 들고 나온 것은 2000년 총통선거 때 효과를 보았던 ‘중국 위협론’을 다시 불러일으켜 유권자들의 위기의식을 자극해 표로 연결하자는 속셈이 크다. 재집권에 실패하더라도 국민투표 결과에 따른 독립론을 내세워 롄 정권을 압박하려는 노림수도 깔려 있다.

이에 맞서 롄 주석은 ‘국민투표 보이콧’ 운동을 펴고 있다. 국민투표 참가율을 50% 밑으로 끌어내려 국민투표 자체를 무산시키겠다는 전략이다. 국민당 소속인 마잉주(馬英九) 타이베이(臺北) 시장은 시민에게 국민투표 불참을 호소하고 있다.

60% 이상이 국민투표 실시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최근 여론조사 결과도 롄 주석 진영을 고무시키고 있다.

중국은 국민투표 강행을 대만 독립을 향한 포석으로 보고 격렬히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선거 때 대만해협에서 미사일 발사 훈련을 하는 등 강공책을 편 것이 역효과를 냈다는 판단 때문에 겉으로 드러나는 군사적 움직임은 자제하고 있다. 대신 대만해협의 안정을 원하는 미국 등 국제사회로부터 국민투표 반대 여론을 이끌어 내는 외교적 압박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베이징=황유성특파원 ys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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