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독재투사’서 버림받은 독재자로

  • 입력 2004년 3월 1일 19시 16분


지난달 29일 국외로 탈출한 아이티의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 전 대통령(51)은 ‘아이티 민중의 희망’에서 출발해 ‘부패한 정치인’으로 정치 인생을 마감했다. 그의 출국에 이어 다국적군의 아이티 진입으로 한달 가까이 계속된 아이티 유혈 소요 사태는 해결 국면을 맞고 있다.

▽인생 유전=뉴욕 타임스는 지난달 29일 아리스티드 전 대통령에 대해 “아이티 빈민가에서 민주주의를 역설하며 대통령에 올랐으나 권력을 잡은 뒤 자신이 주장해 온 바를 실천에 옮기지 못한 인물”로 평가했다.

아리스티드 전 대통령은 1990년 12월 아이티 역사상 첫 민선 대통령에 당선됐다. 민중은 30년 가까운 뒤발리에 부자의 독재에 대항해 민주주의를 부르짖어온 이 ‘해방신학파 신부’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1953년 빈농의 아들로 태어난 아리스티드 전 대통령은 영국, 캐나다, 이탈리아, 이스라엘 등에서 신학과 심리학을 공부한 뒤 82년 사제 서품을 받았다. 빈민구제에 힘쓰면서 독재정권을 정면으로 비판한 그는 80년대 몇 차례 암살 위기를 넘기면서 ‘민중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급진적인 정치활동을 한다는 이유로 88년 교계의 배척을 받자 94년 공식적으로 사제직을 버렸다. 이후 결혼도 했다.

그는 90년 선거에서 승리해 91년 2월 대통령에 취임했으나 7개월 만에 군부 쿠데타로 축출돼 미국으로 망명했다. 94년 다국적군이 군정을 몰아내자 대통령직에 복귀해 임기를 마쳤다.

연임을 금지한 헌법에 따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그는 2000년 재출마해 다시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러나 야권은 대선과 총선에서 그가 이끄는 여당이 부정선거를 했다며 총선 재실시를 주장해 왔다.

한때 빈민의 영웅이었던 그는 첫 번째 임기 중 상당한 부를 축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번째 임기에서는 선거 부정과 정치적 부패, 경제 실정으로 국민의 분노를 촉발시켰다. 결국 지난달 29일 두 번째 망명길에 올랐다.

외신들은 그가 1일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 도착했으며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망명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주성원기자 swon@donga.com

▼다국적군 속속 도착…대법원장 권력승계▼

▽어수선한 아이티=미국, 프랑스, 캐나다 등의 다국적군이 속속 아이티에 도착해 치안유지에 들어갔다.

미국은 200여명의 해병대를 파병했으며 이후 500명까지 병력을 늘릴 계획이다. 프랑스도 300여명의 군경 병력을 보낼 예정. 다국적군에는 20∼30명의 캐나다 특수부대원도 포함돼 있다.

앞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평화유지군 파병을 승인했다. 카리브공동체 회원국 정상들은 2일 자메이카에서 회담을 갖고 아이티의 안정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보니파스 알렉상드르 대법원장이 임시행정수반을 맡았으나 수도 포르토프랭스 거리에서는 약탈과 방화가 이어지는 등 사실상의 무정부 사태가 빚어졌다. 아리스티드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무장한 채 대통령궁에 집결해 반군과의 충돌도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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