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견!중국의 세계유산][여행]바위에 새긴 ‘천년 설법’

  • 입력 2003년 11월 5일 19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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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칭시 다쭈현 바오딩산의 작은 계곡안 돌벽을 온통 장식한 다푸완의 다쭈스커. 당나라 말부터 청나라까지 근 1000년이나 이어진 중국 석각 가운데서도 최전성기인 남송대 작품(13세기 후반)이다. 조성하기자
충칭시 다쭈현 바오딩산의 작은 계곡안 돌벽을 온통 장식한 다푸완의 다쭈스커. 당나라 말부터 청나라까지 근 1000년이나 이어진 중국 석각 가운데서도 최전성기인 남송대 작품(13세기 후반)이다. 조성하기자
돌이 말을 한다면, 글쎄…. 말은 하지 않아도 들을 수 있다면. 그 역시 놀라움일 터. 중국 쓰촨(四川)성 오른편에 위치한 충칭(重慶)직할시 다쭈(大足)현 바오딩(寶頂)산의 다쭈스커(大足石刻). 1000년 세월 절벽의 돌벽에 갇힌 수백기의 부처는 지금도 사바세계의 중생을 향해 설법한다. 바위보다 육중한, 돌보다 단단한, 그리고 산보다 장대한 정법(正法)의 정신으로 올바르게 살라고.

중국 대륙 서부 쓰촨성의 한 시에서 직할시로 승격된 충칭. 도심에서 서쪽으로 달리던 버스는 1시간10분 만에 다쭈현에 도착했다(거리 81km). 여기서 드문드문 포장공사가 진행 중인 시골 마을길을 따라 경사가 완만한 산등성을 오르기를 40분. 도착한 곳은 제법 큰 마을이 들어선 바오딩산의 다푸완(大佛灣)이다.

돌부처라면 절벽의 마애불이나 조각에 익숙한 우리에게 벽감(壁龕·벽에 오목하게 파놓은 공간)에 새겨 놓은 수천의 돌조각은 생경하게 다가오다. 또 바다의 만(灣)처럼 오목하게 파인 조그만 계곡 하나를 온통 메우는 다푸완의 석각군 다쭈스커는 한마디로 ‘충격’이다. ‘다푸완’이라 불리는 바위 계곡의 절벽. 이야기를 담은 벽화처럼 수천개 조각이 공백 없이 빽빽하게 벽감을 메운 모습을 보게되면 ‘역시 중국’이라는 말이 나오고야 만다.

다푸완 절벽(왼편)과 천수관음.

●남송시절 스님이 70년간 불상조각

바오딩산의 바위계곡을 온통 조각으로 장식하겠다는 발상부터가 그렇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위에 새겨 후손들에게 영원히 전달하겠다는 뜻부터가 그렇다. 인자한 미소의 부처대신 18중 지옥의 끔찍한 형벌을 통해 사람의 도리를 깨닫게 하는 통렬한 직설법(지옥변상·地獄變相). 하늘을 뒤덮은 1007개의 손과 그 손바닥에 그려 넣은 1007개의 눈으로 ‘소리를 보듯’(관음·觀音) 주의 깊게 중생의 소리를 듣겠다던 관세음보살님의 무한한 자비를 표현하는 기막힌 상상력(천수관음·千手觀音). 누운 자세로 열반에 든 대형와불(석가열반성적도·釋迦涅槃聖跡圖)에서 부처님의 무릎 아래 부분을 생략해 버리는 과감한 표현 기법. 다쭈스커를 대면하는 순간 사람들은 그 신비함과 오묘함, 아름다움과 무한한 상상력에 도취되어 석각의 포로가 되고 만다.

중국이 세계 석굴조각의 최고봉이라고 스스로 일컫는 벽화식의 벽감 조각 다쭈스커. 이 전대미문의 탁월한 석각예술품은 이 계곡의 절벽을 70년(1179∼1249)간 조각하며 이땅에 불국정토를 구현하겠다고 서원한 한 스님에 의해 탄생했다. 주인공은 남송(南宋·1127∼1279)의 자오즈펑(趙智鳳)이다.

사연은 이렇다. 석각가의 아들로 물난리 통에 다쭈현의 동굴에서 태어난 즈펑. 아이의 비범함을 알아챈 이 동네 황(黃) 부자는 “한 산에 두 호랑이가 있을 수 없다”며 부정한 아이라고 모함해 강물에 내쳐 죽게 한다.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즈펑. 그러나 어머니의 죽음이 임박한다. 그때 나타난 다쭈현의 한 스님. “출가만이 죽음을 막는다”고 말하자 효자 즈펑은 불교에 입문한다. 그때가 다섯 살.

황 부자는 모함 사실이 드러나 징역을 살지만 출옥 후에도 복수심에 불타 즈펑의 아버지를 괴롭히고 끝내 아버지는 황 부자 부하의 칼에 죽는다. 분노한 즈펑은 황 부자 집에 불을 질러 관리인과 자녀를 죽게 하고 달아나 숨는다. 22세가 되어 귀향한 즈펑. 고향에는 전염병이 창궐해 사람들이 죽어나간다. 즈펑은 신묘한 의술로 많은 환자의 목숨을 구한다. 그 가운데는 원수인 황 부자와 가족도 있다. 즈펑의 관용에 감읍한 황 부자. 그는 “불교의 힘으로 재난 없고 만민이 행복해 하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며 바오딩산에 석각을 시작한 즈펑을 위해 재산의 대부분을 내놓는다. 그리고 석각은 70년 동안이나 계속된다.

●석굴상 5만여개 세계적 걸작으로

현재 바오딩산의 다푸완 석각은 즈펑 사후 조금씩 덧붙여져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됐다. 다쭈현에는 바오딩산에만 석각이 있는 것이 아니다. 베이산(北山) 난산(南山) 등지에 무려 40개의 석각이 더 있다. 조각상은 줄잡아 5만여개. 이런 석각은 바오딩산 석각 이전인 당나라 말기(9세기 후반)부터 시작돼 남송(13세기 후반)대에 꽃을 피운 뒤 청나라(1636∼1912년)까지 근 1000년간 이어진다. 제2차 세계대전 후반 쓰촨성의 국민당 정부를 궤멸시키기 위한 일제의 대규모 공습에도 석각은 손상되지 않았다.

충칭시 다쭈현(중국)=조성하기자 summer@donga.com

●패키지여행

동아트래블(www.dongatravel.co.kr)에서는 아시아나항공편으로 충칭에 도착해 다쭈스커와 쓰촨성 북부 산악지역의 비경인 황룽(黃龍) 및 주자이거우(九寨溝)를 두루 여행하는 패키지(4일형 5일형)를 판매 중. 가격은 79만9000∼99만9000원. 02-777-8100

▼충칭 다쭈현 다푸완 계곡▼

누운 채로 열반에 드신 석가모니를 바위벽에 조각한 ‘석가열반성적도’. 조성하기자

충칭(重慶)직할시의 다쭈(大足)현 바오딩(寶頂)산의 작은 계곡 다푸완(大佛灣). 바위 절벽을 오목하게 파내 만든 벽감(壁龕)에 수천 개의 돌조각이 새겨진 다쭈스커(大足石刻)는 당나라 말기부터 청나라까지 이어진 중국의 석각 가운데서도 최전성기였던 남송대(13세기 후반)의 작품이다.

자오즈펑(趙智鳳) 스님의 진두지휘로 무려 70년간이나 계속된 돌조각 작업. 그 내용은 대부분 부처의 가르침 등 불경의 내용을 알기 쉽게 혹은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곳을 다푸완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 때문.

‘석탱’(石幀·탱화를 돌에 옮겨 놓은 것이라는 뜻의 조어)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불경의 내용을 마치 벽화처럼 계곡의 벽에 조각한 다쭈스커. 그것은 돌계단을 따라 계곡 아래로 내려가야 볼 수 있다. 계곡은 원형으로 바다의 만(灣)을 닮았다. 그리고 조각은 돌벽을 오목하게 파낸 벽감에 새겨져 있다.

절벽을 가득 메운 수천의 조각상. 마치 한 편의 무성영화를 보는 느낌이다. 가이드의 설명 없이 조각만으로 내용을 파악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도 사실적인 묘사와 정교한 조각기법 덕분에 바라만 보아도 즐겁다.

현대적 추상미가 느껴지는 석각 ‘육도윤회도’. 조성하기자

육도윤회도(六道輪廻圖). 기하학적 구도의 이 추상적 조상은 윤회를 상징하는 일종의 도판이다. 원판 안의 작은 조각이 모여 이루는 전체적인 조형적 아름다움은 너무도 현대적이어서 이것이 700여년 전 것이라는 사실마저 잊게 한다. 육도란 깨달음을 얻지 못한 무지한 중생이 인과관계에 따라 윤회전생(輪廻轉生)하게 되는 여섯 갈래 길을 말한다. 이 도판은 어떻게 하면 지옥도(地獄道), 아귀도(餓鬼道), 축생도(畜生道), 아수라도(阿修羅道), 인간도(人間道), 천상도(天上道)로 떨어지는지 그 인과관계를 보여준다.

높이 20여m의 벽감을 수백 개의 조상으로 가득 채운 류번쭌(柳本尊) 행화사적도(行化事跡圖·높이 12.6m 너비 24.5m 깊이 7.5m)는 당나라 말기 쓰촨(四川)성에 불교를 첫 전파하는 장면을 조각한 것. 정밀한 조각기법은 감탄할 만하다.

그 오른편의 ‘지옥변상’(地獄變相·높이 12.7m 너비 20m 깊이 2.5m)은 가장 인기 있는 작품. 상단의 지장보살이 양편에 10분의 부처와 현생의 신을 거느리고 하단의 18중(重)지옥을 내려다보는 내용이다. 지옥의 참혹한 형벌이 너무도 사실적으로 묘사돼 있다. 그 중 재슬지옥(載膝地獄)은 스님에게 술을 들게 한 이가 지옥에 떨어져 무릎 잘리는 형벌을 받는 장면을 담고 있다.

1007개의 손을 가진 천수관음(千手觀音), 길이 31m의 반신와불(半身臥佛). 아마도 다쭈스커의 최고 걸작품이 아닐까 싶다. 천연 석굴 안에 모셔진 관세음보살 좌상 뒷면의 동굴 벽이 온통 1007개의 손으로 뒤덮인 모습은 장관이다. 특이한 것은 손바닥에 새겨진 눈. 반신와불은 부처님이 누워서 열반에 드신 모습을 조각한 것이다.

이 밖에도 벽에는 숱하게 많은 조각이 다양한 가르침을 담고 천년세월을 견디고 있다. 늘 들려주는 이야기는 같아도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바뀌니 이야기는 늘 새롭다. 천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다쭈스커가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은 그 덕분이기도 하다. 세계유산에는 1999년에 등록됐다.

충칭시다쭈현(중국)=조성하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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