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紙 “러시아 10월사태 옐친이 부추겨”

  • 입력 2003년 10월 5일 18시 38분


코멘트
4일은 러시아 민주화 과정에서 일어난 최대의 유혈 참사였던 1993년 10월 사태 발생 1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당시 보리스 옐친 대통령의 무력진압 명령에 대한 역사적 해석은 여전히 엇갈리고 있다.

10월 사태는 옐친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개혁파와 최고회의(의회)를 중심으로 한 보수파가 2년여 동안의 대립 끝에 충돌한 사건. 옐친 대통령이 포고령으로 최고회의를 해산하고 헌법을 정지시키자 보수파가 이에 반발, 옐친 대통령을 탄핵하고 의회 청사에서 농성에 들어갔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당시 옐친측이 군 동원의 명분을 찾기 위해 의회파 지지자들의 방송국 점령을 방관하고 유인했다”는 주장을 내놓아 눈길을 끌었다. 옐친측이 고의로 혼란과 폭력사태를 유발했다는 것이다. 방송국이 점령되자 10월 4일 옐친 대통령은 ‘기다렸다는 듯’ 군을 동원해 강제진압에 나섰고, 이 과정에서 적어도 150여명이 사망했다.

공산당 등 야당 지지자 3000여명은 4일 모스크바 중심가에서 10년 전 숨진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옐친 전 대통령을 비난하는 집회를 열었다.

겐나디 주가노프 공산당수는 10월 사태를 ‘옐친정권이 자행한 학살사건’으로 규정하고 “옐친 정권을 계승한 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정부를 12월 총선에서 심판하자”고 주장했다. 10년 전 친(親)옐친파와 최고회의파로 나뉘어 무력 충돌까지 벌였던 사건 당사자들도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당시 의회파였던 드미트리 로고진 하원 외교위원장은 이즈베스티야 기고를 통해 “우리의 행동은 정당했으며 오히려 헌법을 유린하고 국가전복을 꾀한 것은 옐친측”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겐나디 부르불리스 당시 국무장관은 “희생자가 생긴 것은 유감이지만 국가의 존립을 지키기 위해 반란을 진압할 수밖에 없었다”고 맞섰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 kimkih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