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한인사회 ‘反 이민-인종차별’ 냉가슴

  • 입력 2003년 9월 16일 18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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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테러 이후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미국 내 반(反)이민 정서 및 인종차별 경향으로 한인 사회를 비롯한 미국 내 소수민족 사회에 비상이 걸렸다.

미 행정부가 기소절차 없이 영주권자를 즉각 추방할 수 있는 내용 등을 담은 애국법II를 추진하는 데 이어 캘리포니아주가 인종차별 의도가 뚜렷한 ‘주민발의안 54’의 표결을 앞두고 있어 소수민족계 및 인권단체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인종차별 논란=‘주민발의안 54’는 주정부와 카운티 시정부가 인종, 민족, 출신국가별로 주민 관련 자료를 수집 분석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지자들은 이 발의안이 법제화되면 인종구별이 없는 속칭 ‘컬러블라인드 사회(colorblind society)’를 구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불필요한 예산 낭비를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들인 소수민족계와 인권단체들은 이에 수긍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이 발의안이 △각 사회집단의 특성에 맞는 정책을 불가능하게 하고 △모든 인종이 평등한 교육을 받고 있는지 확인할 수 없게 할 뿐만 아니라 △특정 인종을 겨냥한 혐오 범죄를 기소하기도 어렵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남가주노동상담소(KIWA) 데니 박 소장은 “예를 들어 관공서에서 백인만을 고용하거나 유색인종에 대한 혐오범죄가 증가해도 관련 관공서의 (피해사례, 고용현황 등에 대한) 인종별 수치 집계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심증만 있고 물증은 전무한 사태를 불러올 것”이라며 “이는 인종차별을 제도화하려는 움직임”이라고 주장했다.

의료계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3일 캘리포니아대LA분교(UCLA) 메디컬센터 앞에서 의사와 간호사 30여명은 기자회견을 갖고 “발의안이 법제화된다면 인종별로 다른 각종 병 치료 및 예방법에 대한 연구에 큰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반대 의사를 표했다.

UCLA 공공보건학과 릭 브라운 교수는 “인종 민족별로 공공보건 자료를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연구하고 치료방법을 찾아내는 의료계로서는 많은 생명을 위협하는 결과에 봉착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응 움직임=한미변호사협회(KABA)가 지난주 ‘주민발의안 54’에 대한 반대성명을 발표한 데 이어 KIWA를 비롯한 10여개 캘리포니아 한인단체들이 ‘발의안 반대위원회’를 발족하고 15일 관련내용을 한인 유권자들에게 설명하는 세미나를 갖는 등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다.

위원회의 코리아리소스센터 심인보 소장은 “발의안은 주지사 소환투표와 함께 표결에 부쳐질 예정이어서 아직 확실한 결과나 시기를 예측키 어렵다”며 “그러나 이 같은 움직임은 단발성이 아니라 미국이 경제적으로 어렵고 안보에 대한 위협이 있을 때마다 이민자 및 소수계를 희생양으로 삼아온 전례를 되풀이하는 심각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김정안기자 cre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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