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세계고고학 학술대회 임효재교수 참관기 "발굴은 없다"

입력 2003-07-01 18:41수정 2009-09-28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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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의 올림픽’으로도 불리는 ‘제5회 세계 고고학 학술대회’가 지난달 22일부터 27일까지(한국시간) 미국 워싱턴 가톨릭대에서 열렸다. 세계고고학회가 4년마다 장소를 바꿔 개최하는 이 대회에 한국측 조직위원장인 서울대 임효재 교수(고고미술사학과) 등 국내 학자 20여명이 참석했다. 이번 회의에서 동아시아 지역 대표를 맡은 임 교수의 기고로 세계 고고학계의 경향과 이번 대회의 성과 등을 짚어본다. 편집자》

이번 ‘세계 고고학 학술대회’는 100여개 국가, 1000여명의 고고학자가 참여한 ‘매머드 학술대회’였다.

한국에서는 1986년 영국 회의 때 필자가 참석한 것이 유일한 경험이고 보면, 이 행사와 그다지 깊은 인연은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한국에서 20여명의 발표자가 대거 참석해 세계 학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한국 분과는 ‘한국 고고학의 최근 성과-고 김원용 박사 10주기 추모’로 진행돼 ‘한국 고고학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김 박사의 공헌을 세계 학계가 다시 생각하는 뜻 깊은 자리가 되기도 했다. 이번 학술회의에서는 고고학과 인접 과학분야를 접목하는 방법이 집중적으로 논의됐는데 이로 인해 고고학의 연구방법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발전한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워싱턴에서 열린 세계고고학대회에서 임효재교수(일어선사람)가 고고학자 고 김원용의 업적을 발ㅍ하고 있다. -사진제공 임효재

특히 땅을 파지 않고 고고학 연구를 하는 ‘디지털 시대의 고고학’이 주목을 받았다. 인류의 달나라 여행을 실현시킨 우주과학을 고고학에 접목시킨 것이 한 예. 미국항공우주국(NASA) 위성의 원격감지 레이더 장치를 이용해 고고학을 연구하는 방법이다. 유적이 산림에 덮여 있어 조사가 불가능한 경우라든가, 또는 한국의 비무장지대(DMZ)처럼 접근이 불가능한 곳을 위성 또는 비행기에서 원격 감지 레이더로 정확히 조사하는 방법이다. 이를 통해 최근 밀림에 감춰져 있던 크메르 제국의 중세 수도 앙코르 궁전의 면모를 확연하게 밝혀내기도 했다.

‘발굴 없는 고고학 조사’에 발전을 이룩한 또 다른 예로는 ‘자력계측기(magnetome-ter)’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이 기계를 지상에서 끌고 다니면서 조사하는 방법은 미국에서 개발돼 최근 일본 야오이 시대의 야기(八木) 유적에 적용됐다. 조사 결과 땅속에 있는 수십 채의 집 자리와 구조물이 컴퓨터 화면에 나타났다. 예전 같으면 고고학자들이 수십년간 매달려야 했던 작업을 불과 일주일도 안돼 끝낸 것이다.

유적과 유물을 천문학 지식과 연관시켜 연구하는 ‘천문 고고학’도 두드러진 진전을 보였다. 이번 대회에서는 이 분야만 3개 분과가 따로 조직됐다. 유적에 새겨진 별자리를 심층 분석해 과거의 천문학 지식을 복원하고, 과거인들의 세계관을 탐구하는 것. 한국에서는 서울대 천문학과 박창범 교수가 유일하게 참가해 고인돌에 새겨진 별자리의 의미를 되새김으로써 이 분야에 첫발을 내디뎠다.

러시아의 스메카로바 박사가 자기계측장치를 이용해 땅 밑의 유적을 조사하는 모습. -사진제공 임효재

이번에 주목받은 또 하나의 이슈는 이라크전쟁으로 야기된 문화재 파손 문제. 역사적인 문화재 파손 문제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또 다른 전쟁으로 인한 문화유산의 파손 방지 대책을 논의했다. 또 전쟁 때문은 아니지만, 아메리칸 인디언 유적이나 호주 원주민 유적 사례에서 보이는 문화재 파손 문제도 윤리적인 측면에서 심도 있게 논의됐다. 학자들은 유적발굴에서 출토된 인골들을 박물관에 전시하는 행위의 윤리적 위배성과 조직적인 도굴 및 문화재 판매 등에 관한 대책을 토론했다.

이 같은 세계적인 학술대회에 한국에서 많은 수의 발표자가 참석한 것은 높아진 한국 고고학의 위상을 말해준다. 그러나 한국에 관한 연구 발표 주제가 한결같이 지역의 과거사 재구성에 국한돼 현재 세계 고고학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과학적 방법론과는 너무 먼 거리에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세계적으로 고고학 이론과 방법론이 눈부신 발전을 하고 있는 동안 한국에서는 ‘발굴’만을 계속해 온 셈이다. 앞으로 문화유산의 ‘폭넓은 종합 연구’를 위한 학계의 학술 연구 투자가 요구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관련 분야의 전문 인력양성 없이 고고학이 세계의 흐름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덧붙여 세계 각국이 유적 발굴을 통한 관광 활용에 커다란 비중을 두고 있는 데 반해 한국 학계에서는 차후의 유적 보존과 활용 문제가 오히려 한구석으로 물러가 있는 실정이어서 반성이 촉구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학자들이 그간 주어진 조건 속에서 보여준 끈질긴 노력과 성과는 세계학계에서 놀라운 진전으로 비치고 있다. 세계 동아시아 고고학 대회 개최지가 내년 6월 한국으로 결정된 것은 그런 배경을 반영하는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임효재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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