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美대학 ‘소수인종 우대’ 사라지나

  • 입력 2003년 6월 12일 16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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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간 소송에 대한 연방대법원의 심리가 열린 4월1일, 원고와 피고측간 논박을 들으려고 몇시간째 줄을 서 있던 사람들이 대법원 앞 계단을 오르고 있다.AP연합
미시간 소송에 대한 연방대법원의 심리가 열린 4월1일, 원고와 피고측간 논박을 들으려고 몇시간째 줄을 서 있던 사람들이 대법원 앞 계단을 오르고 있다.AP연합
대학 입시에서 소수 인종 출신 학생에게 가산점을 주는 것은 정당한 약자 보호인가, 백인에 대한 역차별인가.

7월 소수 인종 가산점제의 위헌 여부에 대한 미국 연방 대법원의 판결을 앞두고 미국 사회가 논쟁을 벌이고 있다. 발단은 미시간대 학부과정과 로스쿨에 지원했던 백인 학생 3명이 가산점제 때문에 낙방했다며 1997년 대학을 상대로 두 건의 소송을 제기했던 것. 이른바 ‘미시간 논쟁’이다.

가산점제는 소수 인종과 여성을 위한 소수계 우대 정책(Affirmative Action·AA)에 기초하고 있다. 1961년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이 처음 용어를 쓰기 시작했고 65년 린든 B 존슨 대통령이 본격 도입했다.

이번 판결은 큰 맥락에서는 40여년간 다인종사회 미국을 통합해온 AA에 대한 헌법적 재평가의 의미를 갖는다. 위헌 판결이 내려질 경우 주립대 뿐만 아니라 하버드 예일대 등 연방정부의 보조금을 받는 명문 사립대들의 입학 전형 방식에까지 커다란 변화가 예상된다.

AA의 운명은 우리에게도 관심거리다. 서울대가 상대적으로 교육환경이 열악한 지방 학생들을 위해 도입키로 한 지역 할당제도 AA와 기본 철학이 같기 때문이다.

● 할당제와 가산점제

미시간 논쟁의 쟁점은 가산점제와 할당제의 차이다. 미국의 대학은 1960년대 중반부터 AA에 근거해 입학 정원의 일정 비율을 소수 인종 출신으로 채우는 할당제(쿼터제)를 실시했다. 그러나 1978년 할당제는 연방 대법원으로부터 위헌 판결을 받았다. 원고의 이름을 딴 ‘베커 소송’에서 대법관들은 5대 4로 할당제가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당시 캐스팅 보트를 행사했던 루이스 포웰 대법관은 “할당제는 허용될 수 없지만 대학 내 다양성을 위해 출신 인종을 전형 요소로 사용할 수 있다”는 의견을 냄으로써 할당제의 대안으로 가산점제를 도입할 수 있는 길을 터놓았다.

이후 미국의 여러 대학들은 소수 인종에게 가산점을 주는 제도를 운영해왔다. 미시간대는 신입생 전형에서 흑인 히스패닉 인디언 출신 지원자들에게 150점 만점 중 20점의 가산점을 준다. 로스쿨도 얼마간의 가산점을 주어 전체 정원의 12∼17%를 소수계 출신 지원자로 충원해왔다.

미시간 논쟁의 원고들은 인종을 근거로 가산점을 주는 것이 연방에서 보조받는 기관의 인종 차별을 금지하는 인권법과 모든 시민들의 동등한 대우를 보장하는 수정헌법 14조의 위반이라고 주장한다.

연방 대법원 심리(審理)에서 모린 마허니 미시간 대학측 변호사는 “소수 인종이 충분한 숫자(critical mass)가 돼 지적 다양성이 보장되도록 하기 위한 것이 가산점제의 목적이며 이는 할당제와 다르다”고 주장했다. 할당제는 숫자가 고정돼 있지만 가산점제는 그렇지 않다는 것.

그러나 보수 성향의 안토닌 스칼리아 대법관은 가산제가 사실상 할당제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충분한 숫자’라는 표현을 쓰는 순간 ‘할당제의 영역’으로 들어가게 된다”고 지적했다. 앤서니 케네디 대법관도 가산제가 ‘위장된 할당제’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마허니 변호사는 “할당제는 숫자가 고정돼 있지만 가산점제는 그렇지 않다”고 반박했다.

● 가산점제의 대안, X-퍼센트 제도

다인종 국가인 미국의 대학들은 할당제에 이어 가산점제가 폐지되더라도 현실적으로 인종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AA에 반대하는 보수파들은 인종 중립적(race-neutral)인 학생 모집 전략을 개발해 다양성을 확보하라고 주장한다.

인종에 기초한 AA를 이미 금지하고 있는 곳은 워싱턴 캘리포니아 텍사스 루이지애나 미시시피 조지아 플로리다 등 7개 주. 이 중 캘리포니아 텍사스 플로리다 등 3개주 소재 대학들은 고심 끝에 'X-퍼센트‘ 제도를 도입했다. 고교 내신 성적이 상위 특정 퍼센트 안에 드는 학생들은 자동적으로 합격시키는 제도다. 상대적으로 낙후된 지역 학교에 많이 다니는 소수 인종들에게 가산점제에 버금가는 혜택을 주기 위한 배려였다.

텍사스주는 1996년 항소 법원이 AA 위헌 판결을 내린 이후 ‘10% 제도’ 관련법을 제정, 주내 대학들은 출신 고교에서 상위 10% 이내에 드는 학생들을 합격시키고 있다.

다른 대안은 성적 이외의 전형 요소의 비중을 늘리는 방법이다. 텍사스대(오스틴) 로스쿨은 전체 지원자들에게 역경 극복기를 써내게 한다. 텍사스주 소재 라이스대는 지원자들에게 그들의 문화적 전통에 관한 에세이를 쓰게 한다.

역경 극복기나 문화적 전통 에세이 모두 ‘인종’이라는 말은 쓰지 않으면서도 결과적으로 소수 인종 출신 지원자들에게 가점을 주는 효과를 노린 학생 모집 전략이다.

그러나 새로운 입시 전형 방법은 소수 인종 출신 학생들의 합격 비율을 떨어뜨려 학문적 다양성에도 기여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학력 저하라는 부작용까지 낳고 있다는 지적이다.

텍사스주립대의 경우 ‘10% 제도’ 시행 첫 해인 1997년 6500명의 신입생 가운데 흑인은 150명으로 전년도의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로스쿨의 경우 488명의 신입생 가운데 흑인과 히스패닉이 각각 4명과 26명이었다. 1996년에는 40명과 60명이었다.

이 대학의 더글라스 레이콕 법대 교수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10% 제도’ 도입 후 대학 수학능력시험에 해당하는 SAT가 1000점 이하인 학생수는 가산점제 시행 때보다 3배로 늘었다. 대학은 급기야 보충수업반을 운영하게 됐다.

역경 극복기도 비판을 받고 있다. 텍사스대(오스틴) 사무엘 이사카로프 법대 교수는 로스쿨 지원자들의 극복기를 심사한 후 “재능이 뛰어나고 성공적인 삶을 살아온 지원자들이 모두 스스로를 희생자로 소개한 데 놀랐다”며 “지원자들은 자신이 무엇을 성취했는지 보다는 매우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왔다는 점을 부각시키려고 애쓰고 있었다”고 평가했다.

조지 워싱턴대 로스쿨의 제프리 로젠 부교수는 최근 뉴욕타임스 매거진에 기고한 글을 통해 “(현재로서는) AA에 기초한 가산점제만이 학문적 다양성과 엘리티시즘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 AA와 대학의 운명

포춘지 선정 500대 기업들은 AA에 합헌 판결을 내릴 것을 촉구하는 의견서를 연방 대법원에 제출했다. 기업이 인종적 다양성을 반영하지 못하면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게 된다는 주장이다.

재향 군인들은 국가 안보의 논리를 내세워 AA 존속을 주장하는 의견서를 냈다. AA를 폐지할 경우 사관학교에서 소수 인종의 비율은 현저히 줄어들 것이며 이 경우 국가의 안보가 흔들리게 된다는 것.

연방 대법관들은 현재 ‘미시간 논쟁’에 관해 4대 4로 갈려 있고 온건 보수파로 분류되는 연방 대법원 사상 첫 여성 대법관 산드라 데이 오코너가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다.미국 내에서는 현 정부의 보수성향을 감안할 때 위헌 판결이 나오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제기된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미시간대의 가산점제는 할당제로서 이는 국민을 분열시키고 불공정하며 헌법에 어긋나는 것”이라는 요지의 반대 의견서를 이미 대법원에 제출했다.

이번 판결은 대학의 동문 자녀 특례 입학 관행에도 큰 영향을 주게 된다. 동문 자녀 특례 입학은 규정상 인종 중립적이므로 위헌 논쟁을 일으킬 가능성은 낮지만 현실적으로는 백인 출신 지원자들에게 유리한 제도여서 AA 위헌 판결이 나올 경우 더불어 폐지 압력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동문 자녀 특례 입학 관행을 폐지할 경우 대부분의 대학들이 재정난에 봉착하게 된다는 것. 현재 대학을 포함한 미 고등교육기관에 대한 민간 기부금 가운데 동문 기부금 비율은 28%이다.

한편 AA 위헌 판결이 내려질 경우 이 제도의 수혜 대상자가 아니었던 아시아계 학생들의 합격률은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캘리포니아(버클리)대의 경우 2001년 아시아계 신입생의 비율은 45%로 폐지 이전보다 6%포인트 증가했다. 반면 백인은 1%포인트, 흑인과 히스패닉계는 각각 4%와 11%포인트가 감소했다.

뉴욕타임스 온라인 여론조사에서는 8일 현재 AA를 지지하는 비율이 58%로 반대하는 의견(42%)보다 앞서고 있다.

이진영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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