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빈 美예일대 총장에 듣는다]"교육시장 주체적 개방 필요"

  • 입력 2003년 5월 16일 18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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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옥기자
-김미옥기자
리처드 C 레빈 미국 예일대 총장이 15, 16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리는 ‘제3차 아시아 기업지배구조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다.

1993년 46세의 나이에 미국의 명문 예일대 22대 총장에 취임한 그는 예일대의 새로운 도약을 이끄는 주인공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17억달러의 기금 모금 캠페인을 벌여 캠퍼스를 새롭게 단장한 데 이어 의학 및 과학 연구시설 확장에 10억달러를 투자했다.

14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진행된 인터뷰를 정리한다.

―예일대가 미국의 일류대학 중에서도 선두를 유지하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300년 역사’라고 할 수 있겠지요. (웃음) 가장 중요한 비결은 동문들이 장기적으로 적지 않은 재정적 기여를 한다는 것입니다. 예일대 총지출의 3분의 1이 동문회의 지원으로 이뤄집니다. 새로운 과학기술의 개발에는 많은 비용이 드는데 이에 필요한 재정을 동문들이 지원하는 셈이지요. 이런 학교는 미국에서도 별로 없습니다.”

―현재 세계사적 흐름 속에서 대학의 역할은 어떻게 변하고 있다고 보시는지요. 레빈 총장께서 주도하고 계신 예일대 개혁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무엇보다도 국제화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일대는 여러 나라의 학생들을 모집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학부의 경우 학생의 재정부담능력과 상관없이 우수한 학생을 모집하고 학생이 학비를 다 지불할 능력이 없으면 모자라는 만큼을 장학금으로 보조해 줍니다. 박사과정의 경우는 대부분 장학금을 받습니다. 이 장학금에는 학비뿐만 아니라 의료비와 충분한 생활비도 포함되지요. 현재 대학원생의 23%, 학부생의 9%가 다른 나라 출신입니다. 또한 세계 여러 나라의 대학 및 연구소와 파트너십을 맺고 활발히 교류하고 있습니다.”

―현재 옥스퍼드-스탠퍼드-예일 간의 온라인 원격학습 협동프로그램을 주도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온라인 프로그램이 어느 정도까지 대학교육을 대체할 수 있으리라고 보십니까.

“예일대 교육의 중심은 리더십 교육입니다. 따라서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 즉 학생들이 캠퍼스에서 사람들과 직접 접촉하면서 배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온라인 교육은 유용하지만 예일대 교육의 핵심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온라인 프로그램은 학점 인정이나 학위 취득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자격증을 가진 사람들이 이전에 받은 교육을 새롭게 보충하며 평생교육을 받는다는 차원에서 활용되고 있습니다.”

―대학은 대중 교육과 함께 엘리트 교육도 담당해야 합니다. 이런 이중적 역할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 대학에도 리더를 기르는 소수의 기관과 직업교육을 위한 수천개의 기관이 있습니다. 이런 역할 분담은 기본적으로 입시 과정을 통해서 이뤄집니다. 그러나 일류대학이라고 해서 엘리트만을 뽑아서 기른다고 생각하면 잘못입니다. 미국에서는 최상위권 대학도 다양한 학생을 뽑습니다. 모집단위는 엘리트에만 한정된 것이 아닙니다.”

―대학은 지역사회발전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예일대가 위치한 뉴헤이븐시는 인구 12만명의 작은 도시입니다. 도시 안에 있던 제조업체들이 외국으로 빠져나간 후 병원 학교 등 서비스업이 경제구조의 주요 역할을 담당하게 됐습니다. 예일대는 뉴헤이븐시의 새로운 산업기반 육성을 위해 생명의학, 첨단과학 등의 방면에서 예일대가 가진 능력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예일대는 지난 10년 동안 27개 관련 회사를 세웠고 그 중 17개가 뉴헤이븐시에 있습니다. 예일대는 최정예 교수진을 동원해 이들을 지원하며 자회사를 세우도록 했습니다. 또한 교직원들이 낙후된 지역에 집을 사면 2만5000달러 정도를 지원하는 제도를 만들어 도시의 개발도 돕고 있습니다.”

―최근 한국에서는 교육시장 개방 문제를 놓고 많은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정부에서는 일단 개방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는데 미국 중심의 세계화에 대한 거부감과 함께 교육시장 개방에 대한 반대의 여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어떤 종류의 시장이든, 특히 잠재력이 많은 시장일수록 문호 개방은 시장의 질적 개선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교육시장 개방에 반대하는 의견에는 저도 어느 정도 공감합니다. 교육은 햄버거가 아니지요. (웃음) 교육은 국가의 중요한 문제입니다. 다른 나라의 문화가 고스란히 이전돼서 그 나라의 새로운 리더를 기르는 데 지나치게 영향을 미친다면 곤란합니다. 물론 국제적 안목을 갖는 것은 중요하지만 교육만큼은 국가가 가장 큰 권한을 가져야 합니다. 한국의 교육시장이 개방될 경우 예일대도 진출할 생각은 있습니다. 그러나 독자적인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보다는 한국의 유수대학과 파트너십 형식으로 운영할 것입니다.”

―나라마다 기업 문화와 경제 환경이 다른데요. 획일화된 기업지배구조 모델이 가능할까요. 기업지배구조와 관련해서 서로 다른 기업문화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스탠더드가 가능하다는 주장과 각 나라 상황에 따라 다양한 지배구조 관행이 정착돼야 한다는 주장이 날카롭게 맞서고 있는데요.

“글로벌 스탠더드가 가능하다(컨버전스)는 쪽에 무게를 두고 싶습니다. 물론 국가간 차이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국제 자본이 국경 없이 움직이고 있고 투자자들은 더 높은 투명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각국 기업은 선진 지배구조 모델을 도입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투자자들이 용인할 수 있는 국제적인 수준의 지배구조를 도입하지 않으면 경쟁력을 잃을 것이고 투자자들로부터 외면당하겠지요.”

―기업이 주주 이익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지, 채권자나 지역사회 피고용자 등 이해당사자들의 이익을 먼저 보호해야 하는지에 대해 전문가들 사이에 의견이 엇갈립니다. 기업이 누구의 이익을 우선시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기업의 가치는 유형의 자산이 아니라 기업 이미지와 같은 무형 자산에 더 의존하고 있습니다. 환경친화적이라거나 직원 대우가 좋다거나, 고객의 안전을 우선시한다거나, 지역사회의 발전을 중시한다거나, 사회적인 책임을 다하는 기업은 그만큼 좋은 이미지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 기업 가치도 올라가고 결국 주주도 많은 이익을 봅니다. 주주의 가치와 이해당사자의 가치가 꼭 상충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김형찬기자·철학박사 khc@donga.com

신치영기자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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