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사무총장된 이종욱 박사]의료봉사 외길 ‘백신의 황제’

  • 입력 2003년 1월 28일 22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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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W가 이겼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 선거 결과가 나온 28일 오전 11시경(현지시간·한국시간 오후 7시경). 이종욱(李鍾郁) 당선자와 함께 근무해온 WHO 결핵관리국 직원들은 일제히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올렸다.

평생을 빈곤국가에서의 의료봉사와 WHO에 몸바친 한국인이 유엔 산하 최대 국제기구의 최고위직에 오른 순간, WHO 직원들은 국적과 인종을 불문하고 아낌없는 축하인사를 건넸다.

그가 WHO 사무총장에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은 평생을 의료의 사각지대에서 환자를 위해 봉사하면서 보여준 투철한 인류애, WHO 내에서 보여준 능력과 신뢰감, 그리고 우리 정부의 전방위 외교 노력 덕분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당선자는 선거가 끝난 뒤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WHO가 전 세계에 미치는 영향이 커 책임이 무겁다”며 “무엇보다 에이즈 결핵 말라리아 등 산적한 문제를 풀기 위해 많은 사람과 상의해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서울대 의대 재학 시절 경기 안양시의 나자로 마을에서 나병(한센병) 환자를 돌봤다. 이곳에서 가톨릭 신자로 봉사활동차 한국을 찾은 동갑내기 일본인 레이코를 만나 결혼했다.

1976년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개업을 하지 않고 부부가 함께 태평양의 피지로 날아갔다. 빈국의 환자에 대한 그의 봉사활동은 여기에서 시작됐다.

WHO와 인연을 맺은 것은 83년 피지에서 남태평양 나병 관리 책임자로 근무하면서부터였다. 93년부터는 WHO의 지역사무처 질병관리국장, 예방백신 사업국장, 세계아동백신운동 사무국장을 잇따라 역임했다.

예방백신 사업국장 시절 소아마비 유병률을 세계인구 1만명당 1명 이하로 떨어뜨려 사실상 박멸에 가까운 성과를 올리자 95년 미국 잡지인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지가 ‘백신의 황제’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

그로 할렘 브룬틀란 현 총장이 취임한 98년 이후 이씨는 수석 정책보좌관, 정보기술(IT) 프로젝트 담당관으로 WHO의 핵심 부서장을 두루 역임했고 2000년 결핵관리국장으로 임명됐다.

결핵관리국에서 이 당선자와 2년간 함께 일한 영국 출신의 더모트 마허는 “결핵 퇴치사업을 하면서 그는 국제사회의 참여를 이끌어 내기 위해 놀랄 만한 인내심을 보였다”며 “그는 WHO에서 가장 유능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 당선자의 친동생인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국민참여센터의 이종오(李鍾旿·계명대 교수) 본부장은 형의 당선 소식을 전해듣고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꾸준히 의료 봉사와 의료 행정 등에 관심을 가져온 형이 앞으로도 잘 해낼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이 당선자는 현재 제네바에서 부인과 함께 살고 있으며 외동아들은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다.

제네바=송상근기자 songmoon@donga.com

▼ WHO총장 권한과 예우▼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은 유엔 헌장과 규정에 따라 유엔 사무총장 바로 다음 자리인 유엔 사무차장에 준하는 예우를 받는다.

임기는 5년이고 연봉은 21만여달러(약 2억5200만원). 유엔 사무차장급이지만 유엔 전문기구의 수장(首長)이기 때문에 국가원수에 버금가는 대우를 받는다. 각국을 방문하면 언제든지 국가원수를 만날 수 있다.

에이즈 등 전염병의 예방 및 퇴치, 보건환경 개선 등 지구촌 보건 증진 사업의 목표를 정하는 일을 총괄한다.

또 각국 보건당국과의 연대를 통해 각종 기금을 조성하고 국제적 보건사업을 펼친다. WHO 직원에 대한 인사와 조직 구성도 사무총장의 몫이다.

이진한기자·의사 likeday@donga.com


▼16:16 → 17:15… 막판 7차 표결서 英지지로 승리▼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 선거는 미국-이라크전의 예고편인가?’

28일 있은 WHO 사무총장 선거의 막판 대결은 미국과 아시아의 지지를 받은 이종욱(李鍾郁) WHO 결핵관리국장과 유럽이 미는 벨기에 출신의 피터 피오트 유엔 에이즈퇴치계획 사무국장간의 2파전으로 좁혀졌다.

5, 6차 투표에서 16 대 16으로 팽팽히 맞서던 두 사람의 운명을 가른 것은 마지막 7차 투표. 피오트 사무국장을 지지하던 유럽의 한 국가가 대오(隊伍)에서 이탈해 이 국장에게 표를 던진 것이다.

반면 당초 이 국장 지지를 약속했던 중동 5개국이 미국의 대(對)이라크전 준비에 반발해 반전(反戰) 입장을 취하고 있는 유럽쪽으로 돌아서는 바람에 낙승이 예상됐던 이 국장은 고전을 치러야 했다.

투표 과정은 피를 말리는 접전이었다.

오전 9시반(현지시간) 시작된 WHO사무총장 선거는 1차 투표 결과 이 국장은 32표 중 가장 많은 12표를 얻었으나 과반 득표에는 실패했다. 이어 5명의 후보 중 최하위 득표자를 떼어내는 방법으로 과반 득표자가 나올 때까지 계속 투표가 실시됐다. 피오트 사무국장과의 맞붙은 5차 투표에서는 16 대 16으로 표가 정확히 양분됐다. 6차 투표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7차 투표에서 유럽의 한 국가가 이 국장 지지로 돌아서 1시간반 동안의 긴박했던 드라마는 막을 내렸다. 회의장 주변에서는 돌아선 유럽 국가가 미국과 함께 이라크전을 준비중인 영국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제네바=송상근기자 song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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