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읽는 외신]<7>어느 한인여대생의 자살

  • 입력 2002년 12월 30일 18시 22분


장래가 촉망되던 엘리자베스 신양(오른쪽·자살 당시 MIT대 2년)과 신양의 어머니 신기숙씨의 다정했던 모습.
장래가 촉망되던 엘리자베스 신양(오른쪽·자살 당시 MIT대 2년)과 신양의 어머니 신기숙씨의 다정했던 모습.
한 한인 여대생의 죽음을 계기로 올 한해 미 대학가에서는 ‘대학이 어느 선까지 학생을 보호해야 하느냐’는 논란이 계속됐다.

그 시작은 매사추세츠공대(MIT)생 엘리자베스 신양(당시 2학년)이 2000년 기숙사에서 분실 자살하면서부터. 명문 MIT대와 예일대 등에서 입학허가를 받고 뉴욕 카네기홀에서 클라리넷 독주회를 가질 만큼 다재다능했던 신양. 하지만 그는 죽음을 택했다. 그는 대학 내 치열한 경쟁과 성적에 대한 부담감에 정신분열증에 시달려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신양 부모는 딸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까지 학교측이 딸을 적극적으로 돌보지 않았던 데다 딸의 신상 변화에 관해 아무런 통보를 해주지 않아 가족들이 사고를 막을 기회도 주지 않았다는 점을 문제삼아 올 초 학교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 이야기는 곧 뉴욕 타임스를 비롯한 주요 언론들에 의해 보도되기 시작했고 미 대학가는 그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난달 미 프린스턴대에서 만난 이 학교 학생상담소의 안휴선 박사는 신양의 죽음에 대해 “사실 소송이 뒤따르지 않았더라면 최근 대학가에서 급증하고 있는 자살의 한 사례로 묻혔을 가능성이 높았다”며 “소송 소식이 알려지면서 부쩍 긴장한 대학들이 정신 상담 인력과 서비스를 늘리고 개선하는 데 부산한 모습”이라고 전했다.

신양의 죽음은 대학과 학부모의 역할을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 1960년대 급진적인 분위기 속에 학생에게 성인이 누릴 수 있는 완전한 자유를 부여하기 시작했던 미 대학들은 성적표를 학부모가 아닌 학생들에게 발송하기 시작했고 학생들을 보살피며 함께 기거하던 교수들은 기숙사를 떠나갔다. 1972년 선거 연령이 21세에서 18세로 낮춰진 것도 이 같은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켰다.

그러나 신양 사건 이후 요즘 미 대학가에서는 학부모와 대학이 학생의 생활에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날로 치열해지는 경쟁 속에서 학업 스트레스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학생 혼자 힘으로 감당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신양이 그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정확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성공과 최고’에 대한 강박관념이 한 원인이었다면 학교는 과연 어디까지 학생들을 보호해야 하는 것일까. 학생 개개인의 정신상태도 학교의 보호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 신양의 죽음은 한국의 현실에선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들을 제기해 주었다.

김정안기자 cre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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