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포린어페이스誌 분석]"헷갈리는 부시 외교"

  • 입력 2002년 12월 26일 19시 38분


혼란스럽다. 어느 게 진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인가.

테러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민주화가 우선이라고 믿는 신(新) 레이건주의자인가 아니면 독재국가와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믿는 현실주의자인가. 미국의 외교 격월간지 포린어페어스 2003년 1·2월호는 ‘민주화 촉진과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커버스토리를 통해 부시 행정부 외교정책의 부조화를 다음과 같이 해부했다. 필자는 카네기 국제평화 재단에서 민주주의와 법치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는 토머스 캐러서스 소장.

알 카에다 세력의 소탕 필요성 때문에 미국은 독재국가들을 구워삶고 있다. 미국은 99년 쿠데타로 집권한 파키스탄의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을 9·11테러사건 이후 따뜻하게 안아주고 있다. 올해 그가 독재권력을 강화, 비민주적 헌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는 동안 미국은 6억달러를 줬고 합동 군사훈련을 재개했다. 알 카에다 포위에 협력하고 있는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의 독재정권들도 미국의 묵인 속에서 권력을 굳혔다.

그러나 행정부 안팎에서 중동에 대해서만은 민주화 요구가 갑자기 커졌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외교노선의 신봉자들인 이들은 9·11 테러범들이 미국에 우호적인 독재국가 이집트와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이며 사우디가 범행에 필요한 자금을 댄 사실을 지적, 중동의 민주화 없이는 이슬람 과격세력을 없앨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부시 대통령은 팔레스타인에 민주선거를 요구했고 이라크에서 정권교체를 꾀하고 있다. 이집트에 대해서는 추가원조를 거부했다.

그러나 미국의 개입으로 이라크 등에서 민주화가 이뤄지리라고 믿는 것은 위험한 오산. 미국의 군사개입으로 정권이 바뀐 그레나다, 파나마, 하이티와 최근의 아프가니스탄에 이르기까지 모두 독재정권 수립 이전의 과거로 돌아갔다. 그레나다는 상대적으로 온건한 다원주의를 구가하던 시대로 복귀한 반면 하이티는 그 이전의 정치적 혼란으로 빠져들었다. 아프간은 부족간의 내전상태로 돌아갈 조짐. 특히 미국은 아프간에 대한 추가 지원을 거부함으로써 이를 방치하고 있다.

사담 후세인 이전의 이라크는 분열돼 있고 폭력이 만연하며 억압적이었다. 과거로의 회귀를 막기 위해서는 미국의 막대한 지원이 요구되지만 아프간의 사례에서 보듯 부시 행정부가 그럴 거라는 징후는 없다.

더구나 이라크 침공으로 이라크가 중동 전역에 민주화의 해일을 일으킬 진원지가 되기는커녕 반미주의라는 지진의 진앙이 될 우려가 있다. 이를 저지하기 위해 중동 독재국가들은 통제를 더욱 강화해 민주화는 오히려 후퇴할 것이다. 미국이 중동에 민주화의 씨를 뿌릴 수 있다는 기대는 버려야 한다. 지역의 미래는 지역민들이 우선적으로 결정토록 해야 한다.

미국의 외교 우선순위에서 국가 이익과 세계의 민주화는 항상 충돌해 왔다. 하지만 부시 행정부에 들어와 그 간격이 급격히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혼란을 주고 있다. 어떤 지역에서는 민주화에 대한 관심이 갑자기 줄고 어떤 지역에서는 갑자기 민주화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민주화가 장기적으로 테러 근절의 지름길이라는 것은 맞다. 하지만 그 원칙은 중동뿐 아니라 세계 전역에 적용돼야 하며 서두르지 말고 지속적이고 구체적인 조치들을 통해 적용돼야 한다.

홍은택기자 eunta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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