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간선거/이모저모]출구조사 시스템 '먹통'

  • 입력 2002년 11월 6일 17시 57분


6일 새벽(현지시간) 개표 도중 미국 미주리주에서 공화당의 짐 탤런트 후보가 민주당의 진 캐너헌 현직 상원의원을 누르고 당선이 확정된 순간 공화당 선거본부에서는 일제히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탤런트 후보가 50번째로 상원의원이 되면서 하원에 이어 상원도 장악한 순간이었다.

이로써 공화당은 ‘집권당은 중간선거에서 패배한다’는 징크스를 깼다. 주지사 선거에서도 전체 당선자 수는 민주당이 많을 것으로 보이지만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동생이 출마한 플로리다주, 케네디 가문의 민주당 후보와 경쟁한 메릴랜드주 등에서 공화당이 승리했다.

한편 5일 미국 중간선거에서는 출구조사 결과가 공표되지 않아 언론사들이 당선자를 추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투표를 마친 유권자들이 어느 후보를 찍었는지를 전문적으로 조사 분석하는 VNS(Voter News Service)사의 컴퓨터 시스템에 문제가 생겨 신뢰성 있는 출구조사가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

VNS는 ABC CBS NBC 등 공중파 방송 3사와 뉴스 전문 케이블 방송인 CNN, 폭스 및 AP통신이 공동 운영하는 컨소시엄. 최고의 신뢰성을 자랑해 왔지만 2000년 대통령선거 당시 플로리다주의 출구조사를 정확히 하지 못하는 바람에 VNS에 의존했던 TV 방송사들이 당선 예상자를 번복하는 사상 최대 오보 소동을 치렀다.

VNS는 이후 출구조사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개선했지만 이번에 유권자들의 투표 결과를 분석하는 시스템에 오류가 생기면서 언론사에 출구조사 결과를 제공하지 않기로 했다.

이에 따라 방송사들은 실제 개표 결과를 지켜보며 당선자를 추정해야 했고 AP통신은 자체 취재인력을 동원해야 했으며 VNS에 크게 의존했던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 신문사들은 상대적으로 큰 타격을 받았다.

○…공화당은 선거 결과에 대해 “부시 대통령과 공화당이 역사를 만들었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부시 대통령은 플로리다 주지사로 당선된 동생 젭 부시에게 전화로 “커다란 승리를 이뤘다”고 말하는 등 6일 오전까지 30여명의 공화당 당선자들에게 격려 전화를 했다. 부시 대통령 부부는 자신들의 결혼 25주년 기념일인 5일 백악관에서 밤새 개표 결과를 지켜보았다.

○…2년 전 대선에서의 ‘오보 소동’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미국 방송사들은 유례 없이 조심스러운 보도 태도를 보였다. 1분이라도 경쟁사들보다 결과를 먼저 알리려고 속보 전쟁을 벌였던 과거 모습과는 대조적이었다.

실제로 폭스뉴스는 6일 오전 11시경(한국시간) “방금 AP통신이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엘리자베스 돌 후보가 당선됐다고 발표했지만 아직 폭스뉴스는 확실한 결과를 갖고 있지 않다”고 보도했으며, ABC방송은 부시 대통령이 돌 후보에게 축하 전화를 건 후에도 “아직 돌 후보의 당선을 확실히 말할 수는 없지만 부시 대통령은 돌 후보에게 축하 전화를 걸었다”고 전하기도 했다.

○…메릴랜드주 주민들은 워싱턴 근교 연쇄 저격 사건으로 지난달 내내 공포에 떨었지만 총기 규제에 반대하는 공화당 로버트 얼리크 후보를 주지사로 뽑았다. 메릴랜드주는 선거 비용으로 1600만달러나 들어가는 등 ‘선거 접전지’였지만 연쇄 저격사건 때문에 다른 이슈들은 유권자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얼리크 후보는 총기 사용을 규제하지 않는 대신 범죄에 총을 사용하면 엄중히 처벌할 것을 주장해 왔다. 선거에서 패배한 캐슬린 케네디 타운젠드는 총기 사용 규제주의자로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조카다.○…민주당은 현역의원이 선거 도중 부패 혐의로 중도 하차하는 바람에 오히려 뉴저지주 연방 상원의원 의석을 얻었다. 부패 혐의로 물러난 민주당 현역 로버트 토리첼리 의원 대신후보로 나선 프랭크 로텐버그 전 상원의원이 더그 포레스터 공화당 후보를 물리친 것. 토리첼리 의원은 여론 조사 등으로 미뤄볼 때 재선 가능성이 별로 없었는데 불명예스럽게 물러나면서 오히려 당에 도움을 준 셈이 됐다.

○…거센 사임 압력에 시달려온 하비 피트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이 마침내 물러났다. 피트 위원장은 미국 중간선거가 실시된 5일 밤 사직서를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제출했다고 크리스티 할런 SEC 대변인이 발표했다. 뉴욕타임스는 부시 대통령이 그에게 사임을 요구하지는 않았지만 중간선거를 앞두고 물의를 빚은 그가 사퇴하는 것을 백악관에서는 환영하고 있다고 6일 보도했다.

피트 위원장은 윌리엄 웹스터 전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회계부정 혐의로 피소된 유에스 테크놀로지의 회계감사위원장이었다는 사실을 알고도 SEC 5인위원회에 전달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 사임 압력을 받아왔다. 웹스터는 기업회계감독위원회의 초대 위원장에 선임됐다.

부시 대통령은 중간선거 뒤 경제팀을 교체할 계획이며 로런스 린지 백악관 경제고문, 폴 오닐 재무장관이 피트 위원장과 함께 교체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5일 보도했다.

뉴욕〓홍권희특파원 konihong@donga.com

김승진기자 sarafi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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