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뜨는 별]①후진타오 군사위 부주석

  • 입력 2002년 11월 3일 18시 39분


<21세기 중국을 이끌어 갈 중국 공산당 최고지도부가 8일 개막되는 제16차 전국대표대회(16전대)에서 확정된다. 이번 회의에서는 마오쩌둥(모택동)-덩샤오핑(등소평)-장쩌민(강택민)에 이은 제4세대 지도부가 들어설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당 총서기직 승계가 확실시되고 있는 후진타오(호금도) 국가 부주석 등 차세대 지도자들의 면면을 살펴본다.>

“후진타오가 누구야(Who’s Hu)?”

중국통을 자처하는 서방 전문가들조차도 가끔 이렇게 묻는다. 중국의 차기 최고지도자가 될 것이 확실한 후 부주석이지만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칭화(淸華)대를 졸업한 엘리트이며 구이저우(貴州)와 티베트 등 변방에서 근무했고 탁월한 업무 능력과 온건한 품성으로 원로들의 인정을 받아 초고속 승진했다는 것 정도가 고작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그의 처세 철학에서 기인한다. 그는 ‘천시(天時)를 기다리며 굴신(屈身)할 줄 아는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정치적 성장환경과도 이런 처세에 영향을 미쳤다.

후 부주석은 안후이(安徽)성의 가난한 차(茶) 상인 아들로 태어났다. 중국 공산혁명 이후 후 부주석의 집안은 착취계급의 아류인 소업주(小業主) 계급으로 분류됐다. 공부를 잘했던 후 부주석이 칭화대 수리공정과를 택한 것도 출신성분이 나빴기 때문이다. 그가 총서기가 되면 중국 건국 후 최초의 ‘평민방(平民幇)’ 출신 총서기가 된다.

문화대혁명의 소용돌이에서 오지인 간쑤(甘肅)성에 배치된 후 부주석은 당시 간쑤성 서기였던 쑹핑(宋平·전 정치국 상무위원 겸 당 조직부장)을 만난다. 그가 공산주의 청년단 서기가 된 것도 평생의 ‘정치스승’ 쑹 전 위원이 후야오방(胡耀邦) 총서기에게 그를 천거한 덕이었다. 쑹 전 위원은 1992년 14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차오스(喬石) 등을 설득해 불과 49세의 후진타오에게 자신의 정치국 상무위원 자리를 물려준다.

그는 대학 시절 학교 문화선전대의 무용단에서 활동했을 만큼 노래와 춤(서양 사교춤)에 능하다. 영화와 연극, 소설도 즐긴다. 언제나 온화한 모습이다. 그러나 속은 강철 같다. 티베트자치구 서기로 있을 때는 철모를 쓰고 티베트 독립운동을 무력 진압하기도 했다.

후 부주석이 21세기 ‘중국호(號)’의 새로운 조타수가 되면 개혁 개방은 더욱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그는 중앙당교 교장으로 있으면서 경제 금융 법률 기업관리 분야의 세계적 석학들을 초빙해 공산당 간부들을 교육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치개혁에 대해선 분명하게 자신의 생각을 밝힌 적이 없다. 이 문제에 대해 그가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중국의 미래가 좌우될 것이란 관측이다.

▲후진타오는…

△1942년 12월 출생. 본적 안후이(安微)성 지시(積溪)현. 가족은 칭화대 동창인 부인 류융칭(劉永淸)과 1남1녀

△1964년 중국 공산당 입당

△1965년 칭화(淸華)대 수리공정과 졸업

△1982년 9월 중앙후보위원

△1987년 11월 중앙위원

△1988년 12월 티베트자치구 서기

△1992년 10월 정치국 상무위원, 중앙서기처 서기

△1998년 3월 국가부주석(9기 전국인민대표대회)

△1999년 9월 중앙군사위 부주석

베이징〓황유성특파원 ys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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