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그후 1년]<9>'브레이크 없는 미국' 변해야 산다

  • 입력 2002년 9월 9일 18시 08분


9·11 희생자 성조기 명단 - 뉴욕로이터뉴시스
9·11 희생자 성조기 명단 - 뉴욕로이터뉴시스

▽테러를 보는 아랍세계의 두 얼굴▽

이희수 교수

9·11 테러사태 이후 이슬람 세계를 두루 돌아볼 기회를 가졌다. 그들의 의견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첫째는 미국이 그동안 이슬람 세계에 가해 왔던 오만불손한 독선과 이중잣대에 대한 통쾌한 보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특히 팔레스타인 분쟁에서 미국의 지나친 친이스라엘 정책과 민간인 학살을 부추기는 국가 테러리즘을 정당화하는 문제를 가장 많이 지적했다. 물론 그들도 급진적 이슬람 원리주의나 무고한 인명을 앗아간 9·11 테러행위 자체를 두고 옹호하거나 환호하지는 않았지만, 미국에 대한 응징이라는 데는 모두가 한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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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온건그룹이나 지성계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9·11 사태는 이슬람 심장부를 겨냥한 지울 수 없는 테러였다는 것이다. ‘한 손에 칼, 한 손에 코란’으로 각인된 이슬람의 호전성을 더욱 부각시켰을 뿐이라고 했다. 더욱이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습과 이라크 공격에 빌미를 제공해 주었다는 점에서 최대의 피해자는 바로 무고한 이슬람 시민이란 점을 강조했다. 결론적으로 지금 미국이 취하고 있는 일방주의와 친이스라엘 정책, 이슬람 죽이기 정책을 수정하지 않는 한 테러는 지속될 것이란 것이었다. 그들 대다수의 희망은 분노와 복수가 아니라 서구와 공존하고 협력하면서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소박한 꿈이었다.

▽거대제국 종말의 신호탄▽

9·11 테러는 인류문명사에서 패권주의와 독선으로 가득 찬 미국이라는 하나의 거대 제국이 종말을 고하는 분명한 신호탄이었다는 생각이다. 1901년 빅토리아 여왕의 죽음으로 거대한 대영제국의 종말이 예고된 것과 마찬가지로. 로마나 오스만 터키 같은 거대제국의 원동력은 다양한 문화의 수용과 함께 이질적인 이데올로기와 종교의 조화로운 통합에 있었다. 미국적인 가치만을 선으로 보고, 이에 대항하는 모든 세력을 악의 축으로 몰고 가면서, 나와 너의 적대관계가 뚜렷하게 강조되는 가치체계는 한 제국 문명의 말기적 현상을 분명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9·11테러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이슬람세계를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균형 있는 시각이 두껍게 형성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는 점이다. 9·11테러로 사실 우리사회에서는 ‘누가 테러를?’이라는 문제보다는 ‘왜, 이슬람은 반미를?’이라는 담론이 봇물처럼 터지면서 이슬람에 대한 관심이 열풍이라 할 정도로 고조되었다. 1년 동안 80여종의 이슬람 관련 서적이 출판되고, 대학에 이슬람 관련 교과목이 개설되었다. 이슬람 관련 전공자들의 일자리도 늘었으며, 수십억원의 기금이 이슬람연구에 지원되기도 했다. 물론 때늦은 감이 있지만, 이슬람권을 중심으로 하는 제3세계에 대한 우리의 관심과 투자가 증대된 배경에 9·11 테러는 가장 중요한 원인 제공자였다.

13억 56개국에 달하는 이슬람문화권에 관한 관심이 촉발되면서 무엇보다 9·11 테러는 우리에게 ‘진정한 글로벌화’ ‘균형 있는 세계화 인식’이라는 선물을 가져다 주었다. 광복 이후 지난 반세기 동안 서구와 미국을 향한 극도의 지적 편중에 대한 반성과 함께 지금까지 거의 무지상태로 방치해 왔던 다양한 여타 세계를 우리의 입장에서 재조명하자는 대중적 인식이 크게 확산되었다. 이처럼 반쪽 세계화에 대한 반성은 그동안 우리의 가장 큰 약점으로 지적되었던 문화다양성에 대한 존중과 균형감각 있는 세계인식을 높이는 데 중요한 촉매제가 되었다.

▽이라크 공격은 아랍반미 도화선▽

이제 미국은 이라크에 대한 공격을 서두르고 있다. 대량살상무기 개발과 테러와의 연계로 미국과 서방세계를 위협할 수 있다는 잠재적 가능성을 향해 전쟁을 선포하는 것이다. 종래처럼 국제사회의 협의와 유엔의 절차를 거치지 않는 미국만의 결정 방향이 특이하다. 아랍세계는 걸프전쟁 때와는 달리 한목소리로 미국의 의도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1차적으로는 이라크 정권의 붕괴 이후 등장할 서구식 민주화 모델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아랍국가가 없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국가안보를 위해 신무기를 개발하고 소유하려는 근대국가의 기본속성을 근원적으로 부정하고, 무력사용에 대한 정의와 악의 기준을 미국의 자의적인 판단에 맡겨야 하는 엄청난 결과를 수용할 수 없는 것이다. 미국이 마음만 먹으면 반미성향이 강한 어떤 아랍국가도 공격할 수 있는 선례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이라크 공격은 엄청난 재앙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다. 국제적인 연계 조직을 활용한 이슬람 급진조직의 테러활동은 상당 부분 위축되겠지만, 이미 전 세계에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퍼져 있는 반미테러 온상을 어떻게 제거한단 말인가. 오히려 지금보다 더 거센 위협을 감수하는 결과가 되지 않을지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이슬람 내부의 각성▽

미국 프린스턴대학의 버나드 루이스는 오늘날 이슬람 세계의 낙후성과 반서구적인 성향을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이슬람권 내부의 문제로 돌린다. 적절한 지적이다. 그렇다고 이슬람 세계가 온통 반미성향으로 테러에만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다. 주류의 흐름은 이슬람 내부의 문제를 파헤쳐 진정한 민주주의의 길로 나서야 한다는 강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정권교체의 민주화, 자유언론과 다양한 견해의 표방, 이슬람에 대한 세속정부의 박해, 여권신장과 사회참여 확대, 전통적 종교계율의 적절한 재해석 같은 내부 문제의 해결 없이 감정적인 폭력의 대처가 결코 이슬람 세계의 복지와 자존심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그들은 잘 인식하고 있다. 다만 지금 이슬람 세계를 휘몰아치는 글로벌 열풍이 상호이익의 방향이 아닌 강요된 ‘세계의 미국화’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갖고 있을 뿐이다.

9·11 테러 1년이 지나도 이슬람인들의 서구에 대한 증오가 줄어들지 않았다. 그만큼 테러위협은 존재하고, 크고 작은 테러는 계속 일어날 것이다. 이러한 증오를 극복하기 위해 1차적 책임은 이슬람 내부에 있다고 서구는 생각할지 모른다. 그렇지만 서구가 그 증오의 씨앗을 뿌려 놓았다면 그 증오의 뿌리를 제거하는 데도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오늘날 서구는 지배적인 강자의 입장에 서 있다. 그러한 변화를 유도하기에 훨씬 유리한 상황에 있다. 서구 자신의 보호와 번영을 위해서도 이슬람 세계를 적극적으로 끌어안는 변화는 반드시 필요하다. 이러한 발상의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고, 마냥 밀어붙이기만 한다면 인류는 과거의 불행한 역사를 되풀이하게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9·11 테러는 분명 가진 자와 빼앗긴 자의 간격을 좁히라는 문명사적인 메시지였다.

이희수 한양대교수 기고

◆‘9·11이 남긴 것’ 美 名士들의 생각은… ◆

‘9·11은 미국인들에게 무엇을 남겼는가.’

뉴욕타임스는 8일 9·11테러 1주년을 맞아 미국의 정치 경제 문화 스포츠 등을 대표하는 12명의 저명인사로부터 9·11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기고문을 받아 소개했다. 미국 사회의 다양한 시각을 보여주는 기고문 중 일부를 발췌 소개한다.

▽뉴트 깅리치(전 미 하원의장)

“오늘날 아랍세계에서 급속히 퍼져나가고 있는 급진적 이슬람사상은 미국을 증오한다. 미국과 자신들의 가치가 정면 배치되기 때문이다. 이는 단지 대화 단절의 문제가 아니다. “대량살상무기가 지배하는 시대에 ‘포용’은 통하지 않는다. 적들이 공격하기를 기다렸다가는 우리의 국토가 파괴될 뿐이다. 미국 지도자들은 국민의 자유와 안전을 위해서는 외교안보 정책의 기조를 ‘억지’에서 ‘선제 공격’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9·11의 교훈이다.”

▽무하마드 알리(전 세계 헤비급 복싱 챔피언)

“9·11 이후 미국인들에게 이슬람은 ‘무지’와 ‘오해’의 대상에서 ‘증오’와 ‘불신’의 대상으로 바뀌었다. 9·11테러리스트들은 이슬람 신자가 아니다. 그들은 비행기를 납치한 것이 아니라 이슬람의 숭고한 교리를 ‘납치’했다. 유족들의 느끼는 분노에 깊이 공감한다. 그러나 그 분노가 이슬람을 향해 표출되는 것은 위험하다.”

▽토니 커시너(퓰리처상 수상작가)

“비극은 창조를 수반한다. 비극이 휩쓸고 간 빈자리는 새로운 의미들로 채워지기 때문이다. 이 새로운 의미를 구축하는 작업은 권력자들의 전유물이 돼서는 안 된다.”

미국인들은 칼럼니스트나 연구소의 전문가들, 또는 카우보이 대통령(조지 W 부시 대통령)이나 그의 위험한 조언자들이 9·11의 역사적 의미를 해석하도록 허락해서는 안 된다. 9·11의 올바른 의미를 구축하는 일은 미국 시민 전체의 의무이다.”

▽리처드 포스너(미 제7순회 항소법원 판사)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위기에 처해 있다. 위기 상황에서 시민권을 수호하는 문제는 재검토돼야 한다. 시민권은 일부 고지식한 인사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헌법에 명시된 절대적 권리가 아니다. 시민권은 대법원 판사들의 판결에 따라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가변적 권리이다. 국가는 공공의 안전과 개인의 자유 사이에 적절한 균형을 맞춰야 하며 이에 따라 시민권의 범위도 계속 바뀔 수밖에 없다.”

▽스티븐 카터(미 예일대 법대 교수)

“9·11 1주년이 되면서 미국은 9·11 이전의 미국과 닮아가고 있다. 9·11이 일어나기 전 진보와 보수세력은 서로 극한으로 치달으며 타협에는 무관심했다. 지금의 미국도 비슷하다.보수와 진보진영은 비극을 서로 다른 쪽의 잘못이라고 돌리며 9·11을 정치적 세력 확보를 위해 이용하고 있다. 9·11 직후 미국이 보여줬던 단결의 순간은 이제 기억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분열의 골은 다시 깊어가고 있다.”

정미경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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