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제약사 ‘후진국病’ 치료약 외면

  • 입력 2002년 7월 12일 18시 01분


외항선원 전모씨(53)는 지난해 아프리카에 다녀온 뒤 말라리아에 걸렸다. 염산퀴닌주사를 맞으면 쉽게 낫지만 약품을 구할 수 없었다. 결국 그는 한 달 만에 숨졌다.

앞으로 말라리아, 결핵, 수면병 등 주로 아시아·아프리카에서 발생하는 이른바 저개발국 질병에 걸렸다가는 치료도 못 받고 목숨을 잃을지 모른다. 선진국 제약회사들이 돈이 안 되는 이들 질병의 치료제 개발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

패트리스 트루일러 등 세계보건기구(WHO) 소속 연구자 6명이 의약전문저널 란셋 최근호(6월22일자)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지난 25년간 미 식품의약국(FDA)과 유럽 의약품평가국(EMEA)에 등록된 1393개 신약품 가운데 저개발국 질병용 의약품은 16개(1.1%)에 그쳤다. 16개 모두 제약회사의 독자 개발이 아니라 공공 재원을 지원받아 개발한 것으로 나타났다.

선진국이 무시하는 이들 질병은 저개발국에서는 치명적이다. ‘국경없는 의사회’에 따르면 아프리카에서 수면병 감염자는 50만명에 이르고 6000만명이 감염 위험에 처해 있다. 라틴아메리카 인구의 25%가 수면병의 일종인 샤가스병 병원체에 노출돼 있다.

제약회사들은 “돈만 드는 위험한 장사”라고 항변한다. 선진국에서는 이들 질병이 거의 사라진 반면 저개발국 시장은 좁고 구매력이 낮아 이익이 적다는 이유다. 때문에 비만증 치료제 등 선진국형 질병 치료약은 속속 개발되고 있지만 열대질병 개발투자는 거의 중단됐다.

곽민영기자 havef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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