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문제 전문가 대담]서해도발과 북-미관계

  • 입력 2002년 7월 4일 19시 05분


피터 벡 연구실장(왼쪽)의 사회로 고든 플레이크 소장(가운데), 조엘 위트 연구원이 의견을 나누고 있다. - 워싱턴=한기흥특파원
피터 벡 연구실장(왼쪽)의 사회로 고든 플레이크 소장(가운데), 조엘 위트 연구원이 의견을 나누고 있다. - 워싱턴=한기흥특파원
10일로 예상됐던 제임스 켈리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의 방북이 철회됨으로써 북-미간 대화 재개가 다시 어렵게 됐다. 미국은 방북 철회 이유로 북측의 무응답과 서해교전을 들었다. 서해교전을 두고는 한미간에도 이견이 있는 것처럼 비쳐지고 있다. 향후 북-미관계와 한미관계가 어떻게 풀려 나갈지 한반도문제 전문가인 조엘 위트 국제전략문제연구센터(CSIS) 연구원, 고든 플레이크 맨스필드 태평양센터 소장과의 대담을 통해 들어 보았다. 대담은 3일 오후 워싱턴 맨스필드 태평양센터 회의실에서 동아일보 해외 칼럼니스트인 피터 벡의 사회로 진행됐다.

▽벡〓미 국무부의 대북 특사파견 철회를 어떻게 보는가.

▽플레이크〓개인적으론 그리 큰 뉴스도, 대단한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미국과 북한 어느 쪽도 대화할 준비가 돼 있지 않고, 대화에 흥미를 느끼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위트〓파국적인 상황이 벌어진 것이 아니라는 데 동의한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발표는 특사파견을 연기한다는 것이지 취소한다는 것은 아니다.

▽벡〓특사파견 철회에 앞서 북-미가 고위급 회담 재개 결정을 내릴 때까지 18개월이나 걸렸던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위트〓부시 행정부가 전임 빌 클린턴 행정부에 비해 보수적이고, 북한과 같은 국가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 지에 관해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북한은 대화를 하고 싶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국무부가 북한이 특사파견 시기에 대해 제때 응답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특사파견을 철회한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북한은 그 전에도 특정시기까지 우리가 요구하는 답변을 하지 않은 적이 수백 번도 넘지만 우리는 기다렸다. 북한의 응답이 늦다는 사실이 대화에 흥미를 느끼지 않고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국무부가 서해교전을 특사파견 철회 이유로 든 것은 타당한 일이다.

▽플레이크〓북-미관계의 기본 여건을 보아야 한다. 북한은 미국과의 대화를 바라면서도 미국의 요구에 따라 내놓아야 할 것이 없기를 바라고 있다. 부시 행정부의 강경한 입장은 북한엔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벡〓부시 행정부의 대북 접근에 대한 평가와 전망은….

▽위트〓현재와 같은 상태로라면 대화가 진행된다고 하더라도 합의에 이르기는 어렵다. 부시 행정부 내에는 대북정책에 관해 이견이 있으며, 다수는 북한과 어떤 합의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반면 북한은 북한대로 부시 행정부를 의심의 눈으로 보고 있다. 부시 행정부에 클린턴 행정부 시절 북한과 직접 협상을 벌였던 관리들이 거의 떠나고 없다는 것도 문제이다. 협상 테이블에 앉아서 북한 측이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지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협상을 끌어가야 할지를 결정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벡〓미국이 입장을 바꿔 대북 특사를 파견키로 한다면 언제쯤 가능하다고 보는가.

▽플레이크〓북한이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달려 있다. 앞으로 서해교전의 진상에 관해 보다 많은 정보가 나오게 될 텐데 이에 대해 북한이 어떻게 설명하고,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지가 매우 중요하다.

▽위트〓비관적으로 전망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나는 현실적인 입장에서 이야기하겠다. 서해교전에 따른 현재의 남북한 상황이 진정되고 남북대화가 진행되는 최상의 시나리오를 가정할 경우 올 10월이나 11월쯤에는 미 특사의 방북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한반도의 긴장이 계속 고조되고 남북대화도 이루어지지 않는 최악의 시나리오에선 빨라야 내년 이후에나 특사파견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벡〓서해교전이 우발적인 사건인지, 혹은 북한이 의도적으로 저지른 사건이었는지에 관해서도 해석이 분분한데….

▽플레이크〓속단을 내리지 않고 신중히 판단할 필요가 있다. 북한 지도부가 이를 주도했을 개연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과거의 예에 비춰볼 때 이렇게 단정하기는 어렵다. 90년대에 북한이 나진-선봉 자유무역지대에 대한 회의를 마치는 날 북한 잠수함의 한국 영해 침투사건이 발생한 적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북한 군부와 개방파의 내부 다툼으로 해석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북한이 거대한 전략에 입각해 모든 행동을 계산해서 하는 국가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위트〓서해교전의 진실이 무엇인지를 좀더 시간을 갖고 지켜본 뒤 판단해야 할 문제이다. 사건 초기에 나오는 언론보도는 때로 완전하지 않고 부정확하기도 하다. 한국 등 아시아권에서는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전후 관계를 따져서 큰 맥락 속에서 이를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경향이 있는데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중앙의 지시가 없이도 지방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 것은 흔한 일이다.

▽벡〓한국 정부는 서해교전으로 많은 사상자가 났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에 대북 특사파견을 예정대로 해달라고 촉구했으나 미국은 이를 듣지 않았다. 한미 공조 문제에 대해선 어떻게 보는가.

▽위트〓김대중(金大中) 정부는 부시 행정부의 신뢰를 상실했다. 김 대통령이 특히 임기 말인 점을 고려하면 부시 행정부가 김대중 정부의 특사파견 요청을 무시한 것은 그리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플레이크〓김대중 정부는 완전히 레임덕 현상을 겪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미관계는 매우 튼튼하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한미간에 이견이 있다고 해도 기본적인 관계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벡〓서해교전이 대북 강경파들에게 힘을 실어 줬다고 말할 수 있는가.

▽플레이크〓그렇다. 북한은 그들이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 지를 모르는 것 같다. 북한의 위협은 서울과 워싱턴의 강경론자들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

▽위트〓나는 이번 사건이 부시 행정부와 한국에 지속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 곧 상황은 진정될 것이고 부시 행정부는 다시 특사를 북한에 보낼 준비를 할 것이다. 한국 내의 격앙된 분위기가 가라앉고 남북간에 약간의 교류가 이루어진다면 이는 부시 행정부로 하여금 다시 대화 테이블에 앉도록 하는 압력이 될 것이다.

▽벡〓한국의 햇볕정책은 서해교전의 전사자들과 함께 숨을 거두었다고 보아야 하는가. 한국의 차기 대통령에 대한 조언은….

▽위트〓한국의 차기 지도자는 햇볕정책과는 다른 이름의 대북정책을 들고 나오겠지만 그 본질은 역시 북한에 대한 포용정책이 될 것이다. 한국의 지도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대북정책의 전술을 어떻게 취하느냐이다. 대북관계에서 엄격한 조건을 달았던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의 정책은 성공하지 못했다. 이와는 대조적인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이 둘 사이에서 균형을 취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어쨌든 한국은 차기 정부의 출범과 함께 대북정책에서 새 출발을 해야 한다. 보수성향의 인물이 한국의 차기 대통령이 된다고 하더라도 당선 후에는 남북관계 개선을 추구하게 될 것으로 본다.

▽플레이크〓내가 강력히 조언하고 싶은 것은 한 정권의 임기 안에 대북정책에서 많은 것을 거둘 수 없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는 점이다. 김대중 정부의 실패는 상당 부분 국내의 정치적 압력에 기인한 것이었다. 그러나 햇볕정책은 실제론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시키는 데 크게 기여한 것이 사실이다. 대북 포용정책은 장기적인 정책이다. 단기적인 성과만을 놓고 이를 평가해선 안 된다. 따라서 인내가 필요하다. 또 대북정책은 근본적으로 북한의 변화를 유발하기 전에는 성공하기 어렵다. 북한에 변화를 가져오는 단기적인 방법은 정권교체 등 거창한 것이 아니라 바로 시장경제를 도입케 하는 것이다. 종교의 진출도 바람직하다.

워싱턴〓한기흥특파원 eligius@donga.com

▼참석자 약력▼

<조엘 위트>

버크넬대학 졸업

컬럼비아대학 석사

93∼94, 미국 국무부 조정관,

북-미제네바기본합의 당시 미측 협상팀의 일원

전 미 외교위원회 연구원(International Affairs Fellow)

현 워싱턴 국제전략문제연구센터(CSIS) 선임연구원

<고든 플레이크>

브링햄 영대학 졸업

브링햄 영대학

국제정치학 석사

워싱턴한국경제연구소(KEIA) 연구부장

미 대서양위원회 연구원

현 맨스필드 태평양센터 소장

<피터 벡>

버클리 소재 캘리포니아대학 졸업

샌디에이고 소재

캘리포니아대학 박사 과정(국제정치)

워싱턴한국경제연구소(KEIA) 연구실장

동아일보 해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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