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언론 “추가테러 경고 남발 의혹”

  • 입력 2002년 5월 23일 18시 00분


미 언론들이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가 최근 봇물처럼 쏟아내고 있는 추가 테러 경고를 어떻게 보도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우선 시점이 미묘하다. 지난주 부시 행정부는 9·11 테러 가능성을 사전에 알고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파문에 휩싸였다. 이에 따라 미 의회차원의 진상조사로 사태가 확대되는 순간에 테러 경고가 잇따르고 있는 것. 미 언론들은 파문 진화를 위해 “테러 위협을 남발하고 있지 않느냐”(ABC방송)는 의혹을 품고 있다.

또 이 같은 경고 ‘남발’로 국민이 지나친 불안에 떨 우려가 있다. 정국 전환의 의도도 읽힌다. 이번 경고 사태(沙汰)는 부시 행정부에 비판적인 뉴욕타임스(NYT)로부터 시작됐다. 토요일이었던 18일 미 고위관리는 익명으로 NYT에 “알 카에다가 미 고층 아파트를 노리고 있다”고 흘렸다. 주말이어서 기사를 확인할 수 없었던 언론들은 NYT 인터넷판을 보고 기사를 따라갔다.

이어 딕 체니 부통령이 19일 폭스TV에 나와 직접 “제2의 테러 공격은 거의 확실하다”고 말하면서 일부 아파트 지역에서는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20일 연방수사국(FBI)의 로버트 뮐러 국장은 “팔레스타인식 자살폭탄 테러가 미국에서도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고 부시 행정부를 공격하던 민주당은 잠잠해졌다. 21일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까지 “테러리스트들이 대량살상무기를 입수해 터뜨릴 것”이라고 가세했다. 하지만 심드렁해진 일부 신문에서는 럼즈펠드 장관의 경고를 1면 기사로 다루지 않았다.

그러자 22일 FBI는 “뉴욕시의 자유의 여신상과 브루클린 다리가 테러 공격에 노출돼 있다”는 구체성을 가미한 경고를 발표했다.

미 언론들은 늑대가 온다고 외쳤던 양치기 소년으로 미 행정부를 비유하고 싶은 기색이 역력하다.

“정부가 9·11 테러 이전상황에 대한 질문을 막기 위해 추가 경고를 내놓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CBS 뉴스 짐 머피 프로듀서) “독자들은 지나친 경고가 아닌 정보를 원한다.”(신시내티 인콰이어러 워드 부시 편집인)

더구나 요란한 경고 속에서도 테러 대비의 총사령부격인 조국안보국은 5단계 경보 중 3단계인 황색 경보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11 테러의 기억이 선명한 상황에서 국민의 안위에 직결되는 사안을 보도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게 미 언론의 고민이다.

홍은택기자 eunta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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