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첩보기관 FSB “음지에서 양지로”

  • 입력 2002년 5월 7일 17시 44분


러시아 첩보기관이 오랜 은둔을 깨고 ‘양지’로 나왔다.

악명높은 ‘비밀경찰’의 대명사로 구소련 붕괴와 함께 해체된 국가보안위원회(KGB)의 후신인 러시아 연방보안부(FSB)는 6일 창설 80주년을 맞아 기자회견을 갖고 활약상을 언론에 공개하는 한편 기념우표도 발행했다. 기념우표에는 첩보기관 창설자인 펠릭스 제르진스키 등 ‘선배 첩보원’ 6명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올레그 시로몰로토프 FSB 차장은 기자회견에서 “지난 2년 동안 14명의 간첩을 체포했으며 현재도 260명의 외국 첩보원을 감시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극동 지역 등에서 외국 첩보기관의 활동이 활발해지고 있으며 외신기자로 위장한 간첩도 있다”고 말해 FSB의 기능이 강화돼야 한다는 점을 은근히 강조했다.

KGB 출신인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도 “내전 지역인 체첸을 내무부(경찰)가 아닌 FSB가 계속 관할하도록 하라”고 지시해 더욱 힘을 실어줬다.

구 소련 체제가 저지른 모든 범죄행위를 ‘원죄’처럼 뒤집어쓴 채 그동안 외부로 모습이 드러나는 것조차 꺼리던 과거와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그렇지 않아도 KGB 출신들은 푸틴 대통령 정부에서 이미 요직을 장악하고 있다. 푸틴 정부의 실세인 세르게이 스테파신 감사원장과 세르게이 이바노프 국방장관이 모두 KGB 출신이다. 이에 대한 우려와 반발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인권 운동가인 레프 포노마레프는 “무자비한 숙청극을 주도했던 인물들이 새겨진 우표가 나와 경악한다”며 “‘KGB 복권(復權) 작업’이 시작됐다”고 비난했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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