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소비자 손배소송 봇물…美 의료-제약-건설업 ‘눈물’

  • 입력 2002년 4월 29일 18시 12분


미국의 의료 제약 및 건설업계가 환자와 소비자로부터 쏟아지는 손해배상 소송 때문에 회사가 파산하는 등 휘청거리고 있다고 미 경제 격주간지 포브스 최근호(5월13일자)가 보도했다.

소송에 따른 배상액이 늘어나면서 소송이 잦은 산부인과와 신경외과를 없애는 병원이 속출하는가 하면 아파트 건설을 스스로 포기하는 회사도 늘고 있다는 것. 이에 따라 소비자 보호를 위해 만든 법과 제도가 미국의 소송만능주의와 맞물리면서 이들 업계를 붕괴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이 잡지는 지적했다.

▽‘문’ 닫는 병원, 건설사들〓피임기구를 생산하는 달콘 실드사는 89년부터 2000년까지 부작용을 호소하는 소비자 30만명에게 무려 26억달러(약 3조3800억원)를 지급했다. 이 회사는 앞으로 부작용이 우려되는 약은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생산하지 않을 생각이다. 네바다주의 비즈비 타운에서 자그마한 종합병원을 운영하는 아리즈는 최근 산부인과를 폐쇄했다.

조그만 의료사고로 보험사가 보험료를 지난해보다 무려 500%나 올린 8만8000달러(약 1억1440만원)로 올렸기 때문이다. 아파트와 사무실용 빌딩 등을 짓는 로지어 홈즈사는 최근 건물 하자로 가구당 250달러씩 8000가구에 총 200만달러(약 26억원)를 물어준 뒤 아파트 건설사업에서 손을 뗐다. 보험경영 전문회사인 타워스 페린 관계자는 “최근 이처럼 늘어나는 손배소송 때문에 문을 닫는 회사가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손해배상액 ‘눈덩이’〓보험경영 전문 컨설팅사인 타워스 페린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의 손해배상 소송액은 16만여건에 무려 2000억달러(약 260조원). 미국 국내총생산(GDP)액의 2%에 육박하는 수치다. 소송 건당 배상액도 크게 늘었다. 2000년 기준 건당 배상액은 120만달러. 의료사고의 경우는 무려 350만달러다. 이는 6년 전에 비해 무려 3, 4배씩 늘어난 액수.

▽해답은 없나〓의료사고나 건물 하자에 따른 손해배상소송은 시장경제에 있어서 필요악이라는 게 학자들의 일치된 견해. 그러나 문제는 이런 소송이 업계 자체를 붕괴시키는 지경까지 이르렀다는 점. 그런데도 이를 막을 뾰족한 방법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미국 정부는 95년 소송 남용을 위해 ‘소비자 소송 개혁안’을 만들었지만 별 효과가 없는 편.

미국 보험정보원의 수석 경제학자인 로버드 하트위그는 “현재까지 손배소송에 관한 한 묘수가 없다”며 “만약집단소송이 무섭다면 그냥 회사 문을 닫는 게 가장 현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종대기자 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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