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라크 대통령 ‘정치9단’ 이냐

  • 입력 2002년 4월 21일 17시 48분


강한 카리스마와 탁월한 정치감각, 화려한 언변과 위기관리 능력에 훤칠한 용모까지….

대중 정치인이 갖춰야 할 조건과 자질을 두루 갖춘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69)은 샤를 드골에 이어 30년간 프랑스 우파의 지배자로 군림해 왔다.

명문 파리정치대학과 정치 엘리트 사관학교인 국립행정학교(ENA)를 졸업한 그는 60년 조르주 퐁피두 총리의 비서실 행정관으로 들어가면서 프랑스 중앙정계에 발을 내디뎠다.

67년 35세의 나이로 고향 코레즈에서 드골파 후보로 하원의원에 당선된 그는 하원의원(6선) 장관(4개 부처) 파리시장(18년) 총리(2회) 대통령(95∼ ) 등 화려한 출세가도를 달려왔다.

정치적 굴곡도 없지 않았지만 그때마다 뛰어난 정치전술과 정면돌파로 상황을 타개한 프랑스판 ‘정치 9단’이다.

그는 76년 ‘신 드골주의’를 부르짖으며 공화국연합(RPR)을 창당한 뒤 81년 대선에 도전했으나 1차투표에서 고배를 마셨다. 88년 다시 대선에 도전한 시라크는 프랑수아 미테랑 당시 대통령과 맞붙어 2차 결선투표까지 갔다. 결과는 54 대 46의 석패. 그러나 그는 3수 끝에 95년 엘리제궁에 입성하는 끈질긴 집념과 저력을 보였다.

너무 잘 나간 게 흠이랄까. ‘후계자를 키우지 않는 권력의 화신’이라는 비판과 오랜 고위 공직생활에 따른 부패 이미지가 그의 결정적인 약점이다. 특히 파리 시장 재직시 주택업자로부터의 정치자금 수수 의혹 및 정치자금으로 호화판 가족여행을 즐긴 것 등이 대통령 재직 기간 내내 그를 따라다녔다.

시라크 대통령은 이 또한 정면돌파로 밀어붙여 위기를 타개했다. 하지만 정면돌파가 언제나 성공했던 것은 아니다.

97년 시라크 대통령은 취임 2년 만에 RPR가 원내 1당이던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총선을 실시하는 정치도박을 감행했다. 그러나 선거는 리오넬 조스팽이 이끄는 좌파 사회당의 승리로 끝났고 결국 ‘우파 대통령에 좌파 내각’이라는 ‘코아비타시옹(Cohabitation·동거) 정부’가 탄생했다. 그의 정치인생에서 가장 뼈아픈 실수였다.

파리〓박제균특파원 phark@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