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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11월 26일 18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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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 참극이 벌어진 후 압둘 아지즈 사우디아라비아 국방장관은 25일 “아랍인을 비롯한 이슬람 전사들이 투항하면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며 “이 문제는 인권을 고려해 처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마드 알 타니 카타르 외무장관도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이들의 신병처리에 우려를 나타내면서 국제협약에 따라 전쟁포로로 대우할 것을 요청했다.
무장폭동을 일으키긴 했지만 투항한 포로들을 상대로 무차별 폭격을 가한 미국의 처사에 대해 비인도적이라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미국은 외국인 포로들이 아프간을 벗어날 경우 다시 테러조직화 할 수 있다는 이유로 애초부터 이들의 석방을 반대해 왔다. 전쟁포로 처리 문제를 관장해야 하는 유엔은 병력이 없다는 이유로 투항 과정을 북부동맹에 맡겨 참극 발생에 한몫 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미 시사주간 타임지(26일 인터넷판)를 비롯해 외신들이 전하는 ‘포로 학살극’의 현장을 요약 소개한다.
25일 폭동은 전날 쿤두즈에서 북부동맹에 투항한 체첸 파키스탄 등 아랍국가 출신 지원병 800여명이 수용돼 있는 마자르이샤리프 북서쪽 칼라이 장히 요새에서 발생했다.
폭동은 오전 11시경(현지시간) 옷 속에 무기를 숨기고 있던 한 포로가 북부동맹 경비병에게 달려들면서 시작됐다. 곧바로 400여명의 포로가 가세해 경비병들로부터 소총을 탈취하고 무기고를 급습해 경비병들에 대한 공격에 나섰다.
낮 12시경 북부동맹이 병사 500여명과 탱크 2대를 투입하면서 상황은 변하기 시작했다. 급파된 북부동맹 군인들은 요새의 성벽 위로 올라가 총을 난사했으며 이 과정에서 포로 200여명이 사살됐다. 부상을 입고 도피하던 포로 200여명은 근처 사미르간 지역에 주둔해 있다가 북부동맹의 지원요청을 받고 투입된 미군 전투기들의 9차례에 걸친 미사일 공습으로 사살됐다.
외신들은 폭동이 일어난 배경을 외국인 포로들이 북부동맹의 무자비한 대량학살과 약식 처형을 두려워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북부동맹은 2주 전 마자르이샤리프를 장악한 뒤에도 포로로 잡힌 외국인 병사 1000여명을 재판도 거치지 않고 학살해 국제적으로 거센 비난을 받았다. 특히 칼라이 장히 요새는 잔인하기로 소문난 압둘 라시드 도스툼 장군이 장악하고 있는 곳. 그는 외국인 지원병들을 재판에 넘기느니 죽여버리겠다고 수 차례 공언해와 포로들로부터 공포의 대상이었다.
폭동 발생 7시간 후인 오후 6시경 자헤르 와하다트 북부동맹 대변인은 “폭동에 가담한 400여명의 포로는 전원 사살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살아남은 포로들은 26일 새벽까지 로켓포를 발사하며 저항하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유혈폭동 와중에서 미군 2명이 포로들에게 잡혀 감금됐으며 이중 1명은 숨지고 1명은 미군에 의해 구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미 국방부는 이날 미군 투입 사실은 확인했으나 미군 사망자는 없다고 부인했다.
<정미경기자>mickey@donga.com
▽제네바 협약의 포로규정…살해 협박 고문 금지
포로란 전쟁 중 무기를 버린 전투원이나 질병, 부상, 기타 사유로 인해 전투력을 상실하고 교전 상대방에게 붙잡혀 자유가 박탈된 자를 말한다.
49년 8월12일 체결된 ‘제네바 제3협약’ 13조는 ‘포로는 항상 인도적으로 대우되어야 한다’고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포로는 또 인종 국적 종교 정치적 의견에 따른 차별대우를 받지 않아야 하며(17조), 억류기간 중 살해는 물론이고 고문 협박 등 어떠한 보복조치도 금지된다(13, 17조). 심지어 가족들과의 서신교환도 보장된다(71조). 협약 118조는 또 ‘교전 당사자는 적대행위가 종료되면 지체없이 포로를 본국으로 송환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협약은 위반시 명확한 처벌규정을 두지 않아 구속력이 별로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국제적십자위원회(ICRC)가 최근 탈레반 및 외국인 자원병 포로들을 국제법에 의거해 존중해줄 것을 촉구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총 143조로 구성된 이 협약에는 현재 한국 등 185개국이 가입해 있다.
<하종대기자>orion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