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블레어총리 “국제연대 결성” 전방위 외교 분주

  • 입력 2001년 10월 5일 18시 55분


미국을 상대로 한 테러 참사 이후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보다 더 바쁘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정열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블레어 총리는 테러 발생 직후 “이번 테러는 영국에 대한 공격”이라고 규정한 뒤 미국의 테러 응징을 지원하기 위한 국제적 연대를 결성하기 위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그의 지시에 따라 영국군은 오만에서 포클랜드 전쟁 이후 사상 최대의 해외 군사훈련을 하며 유사시 아프가니스탄 전장에 뛰어들 채비를 갖췄다. 블레어 총리는 미국을 상대로 한 테러와 유사한 사건이 영국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며 유사시 런던 상공에서 피랍 여객기를 격추시킬 수 있도록 공군 전투기 부대에 24시간 경계태세를 취하도록 명령하기도 했다.

▽뛰는 블레어〓블레어 총리는 5일 신변의 위협을 무릅쓰고 파키스탄을 방문,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는 등 테러와의 전쟁에 필요한 국제적 지원을 끌어내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활발히 하고 있다. 그는 4일에는 모스크바를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만나 미국과 영국의 아프간 공격에 대한 러시아의 지원을 요청,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방러 직후 그는 오만의 영국군 군사훈련 현장을 찾아 수천명의 병사들을 상대로 연설할 예정.

블레어 총리는 지난달에도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 등 유럽과 중동 아프리카의 10여개국 정상과 접촉, 반 테러 연대에 동참해달라고 촉구했다.

▽함께 뛰는 블레어와 부시〓부시 미국 대통령이 4일 테러와의 싸움을 ‘선과 악의 전쟁’이라고 선언하자 블레어 총리는 같은 날 의회 연설에서 “우리는 정의가 실현되고 악이 패배하는 것을 볼 것”이라고 맞장구를 쳤다. 앞서 블레어 총리는 2일 노동당 전당대회 연설에서도 “우리는 처음부터 당신들(미국)과 함께 있었고, 최후까지 당신들과 함께 할 것”고 강조했다.

블레어 총리는 지난달 20일에는 워싱턴으로 날아가 미 의사당에서 부시 대통령의 연설을 경청했다. 부시 대통령은 “미국에게 영국 이상의 진실한 친구는 없다”면서 특별석에 앉아 있는 블레어 총리를 향해 “친구여 고맙습니다”라는 말로 사의를 표시했다.

▽영국군의 움직임〓영국군은 핵잠함 트라이엄프 등 모두 28척의 함정과 2만3000명의 병력을 중동의 오만에 집결시켜 대규모 훈련을 진행중이다. 오만은 아프가니스탄 작전을 위해 미국의 항모 전단들이 집결해 있는 해상에서 가깝다. 또 영국 특수부대 SAS의 선발대는 지난달 21일 영국 해외정보국(MI5) 요원들과 함께 카불 근처까지 진입, 탈레반 군대와 소규모 교전을 벌이기도 했다고 영국 언론이 전했다.

▽영국의 적극 지원 이유〓영국의 경제 분야 대미 의존도가 높은 데다 이번 테러로 외국인 가운데 최다인 200여명의 영국인이 희생돼 영국 정부와 국민은 ‘남의 일’이 아니라는 인식을 하고 있다. 영국이 전통적으로 유럽보다는 미국과 더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도 배경의 하나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그러나 블레어 총리가 지나치게 앞서나간다는 지적도 있다. 의료 및 실업 문제 등으로 곤경에 처한 그가 국면 전환을 위해 전쟁을 택했다는 관측도 있다.

<파리〓박제균특파원>phark@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