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용출·헬만소장 美테러참사후 국제질서 긴급대담]

미국의 테러 참사가 국제질서와 한반도문제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서울대 국제문제연구소(소장 하용출·河龍出) 초청 강연회(세계화와 국제사회 변화)에 연사로 참석한 미국의 저명한 국제정치학자 도널드 헬먼과 하용출 소장의 대담을 통해 짚어보았다. 대담은 23일 서울대 호암생활관에서 있었다.

▽하 소장〓국제 질서에 미칠 파장부터 얘기를 해보자.

▽헬먼 소장〓첫째, 이번 테러로 인해 ‘세계주의(globalism)’에 있어서 앞으로 정치 안보적 차원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되게 됐다. 지금까지 세계주의는 미국 주도하의 경제적 측면이나 번영에 초점이 맞춰졌다. 이는 때로는 문제를 풀기도, 또는 새로운 문제를 야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세계주의는 정치 군사적 측면에서 새로운 리더십을 미국에 요구하고 있다. 둘째, 테러리즘이 경제적 성격을 띠게 됐다. 그들은 미국의 군사적 힘을 상징하는 국방부(펜타곤)를 공격했지만 동시에 경제적 힘을 상징하는 세계무역센터를 날려보냈다. 셋째, 테러리즘의 위협은 고전적인 전쟁의 위협이나 폭력의 사용과는 매우 다르다. 장기적으로 테러의 위협은 세계 각국간에 새로운 형태의 협력을 요구할 것이다. 군사와 정보력의 새로운 형태의 사용은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를 재정립할 것이다.

▽하 소장〓폭력의 본질과 폭력의 국제적 결과에 대한 견해차를 둘러싸고 논란이 있다. 한쪽은 군사적 테러리즘이라고 보고 다른 쪽은 문명의 충돌이라고 한다.

▽헬먼 소장〓새뮤얼 헌팅턴 하버드대 교수가 ‘문명의 충돌’에서 가치관의 차이를 둘러싼 전쟁을 언급했다. 무슬림이 이끄는 지하드는 헌팅턴 교수가 말한 가장 구체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부분적인 설명에 불과하다. 이번 테러는 정치 사회 경제적 얼굴을 갖고 있다. 부분적으로는 중동에서의 미국의 군사 주둔과 이스라엘에 대한 지원 등과 연관돼 있다. 헌팅턴 교수는 윤리적 종교적 차이를 강조했지만 세계주의를 간과했다. 세계는 미국이 이끄는 기술과 번영에 의해 훨씬 작아졌다.

▽하 소장〓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미국에 동의 또는 협력하지 않으면 적으로 간주한다고 했다. 그의 대처 과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부시 군사응징-협력사이 혼란▼

▽헬먼 소장〓부시 대통령의 리더십은 A도 B도 아니며 잘해봐야 ‘C’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는 부분적으로는 그가 강력하고 분명한 지도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그가 상호 갈등적인 자문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국방부는 테러에 대해 군사적 대응을 주장하고 있는 반면 국무부는 국제협력 등 장기적 과정을 추구하고 있다. 이런 상반된 입장 때문에 부시 대통령은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테러의 응징에 있어서 누가 공격을 했는지, 그리고 왜 공격을 했는지에 대한 명확한 해답이 없다는 점도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번 테러를 진주만 공격에 비유하는 것은 어리석고 부적절하다. 미국의 리더십은 동맹국과의 관계 정립에 있어서 새로운 접근법을 필요로 한다. 기존의 동맹관계는 제한된 의미에서만 타당하다.

▽하 소장〓세계화로 경제적 지위가 상승한 나라보다 오히려 더 가난해진 나라가 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IBRD)의 역할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헬먼 소장〓빈부 격차는 단순히 소득격차뿐만 아니라 건강과 환경의 문제로 전 세계를 불안정하게 하고 있다. IMF, IBRD, 세계무역기구(WTO), 유엔 등 세계기구들이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 이번 테러는 이에 대한 논란을 촉발시킬 가능성이 크다.

▽하 소장〓문명의 충돌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나. 파키스탄은 정부가 대미협력을 선언한 이후 내부갈등이 심각하다.

▽헬먼 소장〓아랍세계는 크게 분열돼 있다. 하나는 과격 행동주의요, 그 극단이 텔레반이다. 또 시아파와 수니파간의 대립으로 수백만명이 죽었다. 국제정치가 이 같은 종교적 분열과 연관돼 있다. 아프가니스탄 보복 공격과 관련해 러시아는 미국에 키르기스스탄의 군사기지 사용 의사를 비쳤지만 상황은 대단히 미묘하다. 미국이 기지 사용 후 복귀하면 아프간의 성전(聖戰)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또 미국이 계속 주둔할 수도 있다. 이는 러시아로서는 상황의 악화를 의미한다. 이처럼 지역갈등에 국제정치를 덧칠하게 되면 다자주의를 뛰어넘는 딜레마를 만든다.

▽하 소장〓이번 사태가 미국의 중동정책에 미칠 영향은….

▽헬먼 소장〓중동지역에서 이스라엘의 위상에 대한 정치적인 재사고가 필요하다. 미국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큰 양보를 하는 쪽으로 기댈 것이다. 이스라엘의 지속적인 팔레스타인 공격과 미국의 대테러 전쟁을 분리해 생각할 수 없다.

▽하 소장〓이번 테러공격으로 미사일방어(MD)체제가 쓸모 없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데….

▽헬먼 소장〓내 개인적 견해는 부시 대통령에 의해 정의된 MD는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려 왔다는 것이다. 적성국가들이 핵무기를 개발해 미국을 전략적으로 위협할 수 있겠지만 이는 몇 년간, 아마도 수십년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현존하지 않는 위협에 대비해 2000억달러를 들여 MD를 개발하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이번 사태로 MD는 잘못 진행돼 온 ‘최우선 과제’였음이 입증됐다.

▽하 소장〓일본이 안보라는 이름 아래 군사력 확대를 꾀하고 있다. 국제적 이슈로 인해 지역적 군사정치적 불균형이라는 역효과가 생겨날 수 있다.

▽헬먼 소장〓일본 내 국수주의가 부활되고 있다. 모든 총리 후보가 집단적 자위권과 교전권을 부정하는 헌법 9조의 개정에 찬성하고 있다. 5, 6년 전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일이다. 미국이 일본에 자국의 정책방향에 맞추도록 하는 신호를 계속 보낸다면 일본은 자위대의 역할을 확대할 공산이 크다. 이는 한국 중국 등 다른 아시아국가의 반발을 부를 것이다.

▽하 소장〓북-미 관계를 전망한다면….

▽헬먼 소장〓미국이 테러집단에 대해 장기간 공격을 가하고, 이것이 미국 정치에서 최우선 과제가 된다면 남북관계에 직접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테러지원국이었던 북한이 즉각적으로 테러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밝힌 것은 매우 의미가 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북한은 미국에 의해 궁지로 몰리는 위험을 감수해야 했을 것이다. 테러에 대한 전쟁이 5년 이상 지속될 경우 새로운 국제안보의 틀이 만들어질 것이며 남북관계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만약 미국이 반테러 국제조직을 만든다면 다른 국가의 협력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이는 다른 나라의 정치적 내부과정에 대한 개입을 부르게 될 것이다. 그러면 북한은 이 그룹에 합류하거나, 아니면 정중한 국가로 남아 있는 식으로 대응할 것이다.

▼이스라엘 팔에 큰 양보 가능성▼

▽하 소장〓한국 외교가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 한국은 국제관계상 미국과 협조하지 않을 수 없지만 이 과정에서 일본의 재무장 등 지역적 문제가 생겨난다. 이러한 세계적 차원의 문제와 지역적 차원간에 발생하는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헬먼 소장〓한국은 아마도 미국에 이의 해결을 강력하게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지역주의보다 세계주의가 우선한다고 강조할 경우 그 위험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남북관계를 실질적으로 재정의하자면 지난 몇 년간 햇볕정책을 포함한 대북정책을 둘러싼 한미간의 조정 노력이 부족했다고 말할 수 있다. 남한은 새로운 입장을 글로벌하게 취하고 있고 이것이 미국을 이끌고 있으나 종착점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조심해야 한다.

▽하 소장〓오늘 대담을 요약하자면 세계적 공동노력을 위한 새로운 정치적 군사적 사회문화적 인프라 구축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 각국이 이를 위한 해법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제질서가 장차 혼돈의 상황으로 빠져들 것이다.

<정리〓이원재기자>wj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