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유족-日우익,11일 야스쿠니서 대치…경찰 제지로 충돌 모면

  • 입력 2001년 8월 12일 18시 43분


11일 일본 도쿄(東京)의 야스쿠니(靖國)신사에서 연좌농성을 벌이려던 한국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원들이 일본 우익단체 회원들과 충돌 직전까지 가는 긴박한 상황이 빚어졌다.

오전 10시반경 소복을 차려 입은 이 단체 김종대(金鍾大) 회장 등 회원 9명이 신사 안으로 들어섰다. 이들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 야스쿠니신사 참배 반대’라는 어깨띠를 둘렀다. 이들은 신사 사무소 응접실에서 신사 책임자와 마주앉았다. 김 회장은 한국인 희생자의 합사(合祀)를 중지하고, 고이즈미 총리의 참배를 막아달라고 요청했다. 신사측은 “분사(分祀)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누구라도 경건한 마음으로 참배를 하러 오면 막을 수 없다”고 대답했다.

또 다른 단체인 한국인희생자유족회의 김경석(金景錫·75) 회장이 신사에 도착해 대화에 참여하겠다고 요청했으나 경비원은 이를 거부했다.

오후 1시반경 갑자기 “조센진(조선인)은 물러가라”는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일본 우익단체 회원 10여명이 히노마루(일장기)를 들고 나타나 소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들은 “조센진은 일본인의 영혼을 더럽히지 말라” “부정한 조센진은 야스쿠니를 곧바로 떠나라”고 외쳤다.

오후 2시15분경 김경석 회장이 떠나기 위해 일본인들의 옆으로 지나가자 이들은 “돌아가라”고 소리를 지르며 김 회장 쪽으로 몰려들었다. 수십명의 경찰이 몰려들어 이들을 가까스로 제지했다.

소동이 벌어지자 사무소에 있던 유족회원들은 경찰의 설득에 따라 경찰이 뒷문에 대기시켜놓은 택시를 타고 근처의 무명용사묘원인 지도리가부치(千鳥が淵)로 자리를 옮겼다. 이들은 “우리들이 뭘 잘못했다고 뒷문으로 빠져나와야 하느냐”며 분개했다.

일본의 시민단체 대표인 우스키 게이코(臼杵敬子)가 신사측과 협의해 1시간 동안 신사 내에서 평화적으로 시위를 벌여도 좋다는 허가를 얻어냈다. 유족들은 오후 4시부터 6시반까지 신사정문 앞에서 농성을 벌였다.김종대 회장은 “한국인 영령들을 야스쿠니에 합사하는 것은 그들을 두 번 죽이는 일”이라며 “선친들의 영령을 풀어내 하루빨리 고국의 유족 품으로 돌려보내라”는 성명을 낭독했다.

이들은 15일까지 야스쿠니신사 부근과 총리관저 앞 등에서 시위와 농성을 계속한다.

<도쿄〓심규선특파원>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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