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 시라크 대통령 소환 위기

  • 입력 2001년 7월 4일 18시 37분


2일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마치고 3일 귀국한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을 반갑게 맞은(?) 것은 ‘시라크 대통령이 증인 신분으로 소환될지 모른다’는 제목의 프랑스 유력 일간지 르몽드의 머리기사였다.

르몽드는 파리 검찰청 장 피에르 댕티약 검사의 보고서를 인용해 “시라크 대통령의 해외여행 경비 출처 관련 의혹을 수사하기 위해 대통령을 ‘보조 증인(temoin assiste)’ 자격으로 소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프랑스 검찰은 시라크 대통령이 파리시장에 재직 중이던 92∼95년 그와 가족, 보좌관들이 우파정당 공화국연합(RPR)으로 흘러들어간 불법 정치자금 가운데 240만프랑(약 4억3200만원)을 해외여행 경비로 유용했을 가능성에 대한 조사를 하고 있다.

프랑스 법에 따르면 ‘보조 증인’은 기소 대상이 될 수 없는 ‘단순 증인’과 기소에 앞서 ‘공식 사법조사’가 시작된 피의자 사이의 중간 신분. ‘보조 증인’으로 소환하기 위해서는 ‘불법행위에 주범 또는 공범으로 참가했다고 볼 만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 이에 따라 댕티약 검사가 ‘보조 증인’ 소환을 자신한 만큼 시라크가 불법행위에 관여했다는 상당한 증거가 확보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돌고 있다.

시라크 대통령 뇌물 스캔들 일지

1999년9월르몽드지, 시라크가 파리 시장 재임중인 91∼94년 우파정당 공화국 연합(RPR)으로부터 500만프랑(약 8억7000만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다고 폭로
2000년 12월 4일검찰, 미셸 루상 전 파리부시장 등 시라크 측근 소환조사
12월 14일시라크, TV에 출연해 관련설 부인
2001년 3월 28일검찰, 1차 소환. 시라크 면책특권 내세워 출두 거부
3월 30일검찰, 2차 소환. 시라크 같은 이유로 출두 거부
5월 22일사회당 공산당 등 좌파연합, 대통령 탄핵안 내기로 결의
7월 3일검찰, 자체 수사결과 RPR로부터 240만프랑(약 4억2000만원)을 가족 외유 경비로 받은 혐의 일부 포착, 시라크 소환 시사

시라크 대통령의 소속정당인 RPR측은 “대선이 1년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대통령을 증언대에서 세우려는 것은 재선을 방해하려는 정치적 의도”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검찰이 시라크 대통령을 소환할 경우 그가 응할지는 불투명하다. 프랑스 사법부는 3월에도 시라크 대통령의 파리시장 재직 중 RPR의 불법 정치자금 조성 혐의와 관련해 증인 자격으로 소환하려 했으나 시라크는 대통령의 면책특권을 내세워 거부했었다.

이 때문에 집권 사회당은 지난달 19일 대통령 면책특권 폐지법안을 하원에서 통과시켰으나 상원은 우파가 장악하고 있어 통과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러나 불법 정치자금 모금 의혹에 이어 또다시 여행경비 스캔들이 터지는 바람에 내년 대선에서 리오넬 조스팽 총리와 대결하게 될 시라크 대통령은 요즘 좌불안석이다. 좌파 일간지 리베라시옹은 최근 사설에서 시라크 대통령을 ‘사기꾼’이라고 지칭하며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파리〓박제균특파원>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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