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어디로 가나]경제 위기감 고조

  • 입력 2001년 4월 24일 18시 29분


'채무 탕감하라'
'채무 탕감하라'
‘인도네시아는 또다시 아시아 경제위기의 화약고가 될 것인가.’

정국 혼란으로 인한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외국기업들이 철수하거나 신규 투자와 투자 확대 계획을 철회하고 있다. 수도 자카르타 거리에는 실업자가 넘치고 물가는 하루가 다르게 요동치고 있다.

지난해 말 동부 자바지역의 존슨앤드존슨이 생산을 멈추고 다른 나라로 이전하기로 했다. 나이키는 11개 공장 중 한곳을 폐쇄할 계획이다. 민족분쟁이 일어나고 있는 아체지역에서는 최근 엑슨모빌이 LNG 생산을 중단했다. 증권시장 등 자본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빠져나간 지는 이미 오래 됐다. 외화가 들어올 데는 없는데 써야 할 곳은 너무나 많다.

인도네시아의 총 외채 규모는 1433억달러. 이 가운데 올해 안에 갚아야 하는 외채는 265억달러나 된다. 지난해 말 현재 외환보유고는 293억달러에 불과한 상태. 채무 연장이 안될 경우 외환보유고가 바닥 나 또다시 심각한 외환위기가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융자를 약속했던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마저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연재순서▼

- (上)혼란한 정국
- (中)국민 정치혐오증 확산
- (下)경제 위기감 고조

세계은행은 당초 빈민과 실업자 구제 등을 목적으로 사회안전망 구축자금 6억달러를 지원하기로 했지만 지난해 지원한 3억달러의 사용처가 불투명하자 나머지 3억달러를 융자하지 않겠다고 최근 통보했다. IMF 역시 경제구조 개혁을 조건으로 지원키로 했던 50억달러 중 4억달러를 지난해 12월 입금하기로 했으나 개혁이 미진하다는 이유로 아직까지 입금하지 않고 있다.

경제전문가 벤니 파사리부는 “IMF는 각종 산업에 대한 정부의 보조금 축소와 중앙은행 독립, 부실채권 조기 처리 등 경제개혁 등을 요구하고 있지만 어느 것 한가지 제대로 된 것이 없다”고 지적했다.

금융구조조정청이 부실 채권 600조루피아 중 올해 안에 27조루피아를 처리하겠다고 밝혔으나 부실 기업들의 정치권 로비로 절반도 처리하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다. 중앙은행 독립은 IMF가 가장 역점을 두고 있지만 현 정권은 별로 그럴 의지를 갖고 있지 않다.

이에 따라 환율도 엉망이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올해 환율을 달러당 7800루피아로 예상했지만 이미 1만1000루피아를 넘어섰다. 이는 30개월만의 최저치로 1998년 외환위기 당시의 수준에까지 육박하고 있다.

환차손에 따른 정부 예산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5%가 넘는 52조루피아에 이를 전망. 또 환율이 오르다 보니 물가도 요동을 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98년 77.63%라는 높은 물가상승률을 경험한 바 있다.

거리를 떠돌며 정치시위에 가담하는 실업자들도 사회불안과 경제불안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정부는 실업률이 5%선이라고 공식 발표했지만 반실업상태를 포함한 실질적인 실업자는 35∼40%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사회단체인 ‘정의와 민주를 위한 새인도네시아연맹’을 이끄는 경제학자 샤리르 박사는 “정치불안이 해소될만한 중대한 변혁이 없는 한 경제는 계속 악화될 수밖에 없으며 실제로 상당기간 어려운 국면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그러나 “이번 경제위기는 인도네시아의 정치적 불안에서 비롯된 것이며 다른 아시아국가들은 정치적으로 안정돼 있기 때문에 아시아 전체로 위기가 번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이 특파원>yes20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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