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팔 숙적 氣싸움 승자는

  • 입력 2001년 2월 8일 18시 37분


이스라엘의 아리엘 샤론 총리당선자(73)와 팔레스타인의 야세르 아라파트 자치정부 수반(72). 비슷한 나이로 평생 싸워온 숙적(宿敵)이 다시 만나게 됐다.

한 사람은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이스라엘의 안전’을 위해 14세 때 비정규 군사조직에 가담했다. 다른 사람은 상인의 아들로 역시 10대에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외치며 투쟁 대열에 나섰다.

48년 1차 중동전 때 샤론 총리당선자는 신생국가 이스라엘의 정규 군인으로, 이집트에서 난민생활을 하던 아라파트 수반은 아버지와 형에게 무기와 탄약을 날랐다. 이후 샤론 총리당선자는 4차례의 중동전을 거치며 특수부대 사령관 등 군 요직을 섭렵했다. 아라파트 수반은 무장 독립투쟁단체인 ‘파타’를 창설해 이끌다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을 맡게 됐다.

샤론 총리당선자는 아라파트 수반을 적어도 10차례나 암살하려 했다. 82년 국방장관으로 레바논 침공을 주도한 샤론 총리당선자는 당시 베이루트 내 PLO 사령부를 공습했다. 아라파트 수반은 이때를 비롯해 숱한 피살 위기를 넘겼다.

아라파트 수반은 7일 샤론 총리당선자에게 축하 서한을 보내 선수를 쳤다. 그는 “올해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 평화를 구축하는 한해가 되기를 기대한다”면서 “유세시 당신은 평화정착 원칙을 정한 ‘오슬로 협정’은 사문화됐다고 주장했지만 새 정부가 평화협정 내용을 지키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샤론 총리당선자가 당선소감을 통해 ‘동예루살렘 양보 불가’를 밝힌 뒤라 아라파트 수반이 강력한 비판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뜻밖에 유화 제스처를 보인 것. 이는 ‘샤론―강성, 아라파트―연성’이란 이미지를 국제사회에 부각시키려는 전술이란 분석이 있다. 겨울바람에 맞선 봄바람이랄까. 앞으로 평화협상이 실패하더라도 강경한 샤론 정부 탓으로 돌릴 수 있어 아라파트 수반은 내심 샤론 총리당선자의 등장을 반기고 있다고 USA투데이지는 7일 분석했다.

숙적이라 서로의 전략을 잘 알고 있는 두 사람이지만 직접 만난 것은 드물다. 98년 10월 오슬로 협정의 후속 조치로 미국 주도 하에 ‘와이밀스 협정’이 체결될 때 외무장관이던 샤론 총리당선자는 아라파트 수반과 악수조차 나누지 않았다.

샤론 총리당선자는 그 무렵 미국에서 발생되는 한 잡지에 기고한 글에서 “아라파트 수반은 살인자이며 거짓말쟁이”라고 격렬히 비난했다.두 사람 관계에 변화의 조짐이 보인 것은 지난해 12월. 샤론 총리당선자는 리쿠드당 당수자격으로 아라파트 수반에게 이슬람 휴일을 축하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례적인 일이었다.전장이 아닌 정치 무대에서 다시 만나게 된 두 사람은 서로 상대방을 필요로 한다는 분석도 있다. 강력한 상대가 있어야 각자 국내 통치 기반을 강화하기에 편하기 때문이다.

<윤양섭기자>laila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