比 '국민의 군대' 유혈 막았다…중립지키며 시위대 보호

입력 2001-01-20 16:43수정 2009-09-21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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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전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 시내에서 50만명의 시민이 조지프 에스트라다의 하야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일 때 군 무장 헬기 4대가 하늘을 누볐다. 목적은 시위진압이 아닌 시위대 보호. 또 전투기가 굉음을 내며 대통령궁인 말라카낭궁 위를 날았으나 역시 하야를 촉구하는 시위대를 지원하기 위한 것이었다. 믿었던 군부마저 돌아서자 더 이상 버틸 수 없다고 판단한 에스트라다는 결국 사임을 발표했다.

86년에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을 몰아내기 위한 대규모 시위가 있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필리핀 군부는 이번에도 국민의 편에 섰다. ‘피플 파워’를 지지하면서 정국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내린 군부의 결단으로 유혈사태는 빚어지지 않았다.

필리핀 군부는 지난해 10월 에스트라다 대통령의 뇌물 스캔들이 터진 이후 정치적 중립을 내세워왔다. 그러나 에스트라다의 탄핵재판을 맡고 있는 상원이 16일 비밀계좌 추적을 금지하면서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지자 판단을 달리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일 앙할로 레예스 군참모총장(55)이 19일 일단의 군 지휘관을 이끌고 글로리아 아로요 부통령에게 충성서약을 하며 상황은 급전했다. 군부의 신망을 한몸에 받고 있는 그가 에스트라다에게서 등을 돌리자 에스트라다 권력기반은 급속히 무너졌다. 오를란도 메르카도 국방장관과 해군, 공군사령관, 경찰마저 속속 에스트라다에게서 등을 돌렸다. 60, 70년대 쿠데타를 끊임없이 시도했던 필리핀 군부는 80년대 들어 시민의 편에 서는 전통을 이번에도 이어간 것이다. 특히 정권교체에 큰 역할을 한 레예스 군참모총장은 86년 피플파워 때의 군참모총장으로 후일 대통령에 오른 피델 라모스의 정치역정에 비추어 향후 거취가 관심을 끌고 있다.

<윤양섭기자>laila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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