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비아계 대량학살 플라브시치, 전범재판소에 자진 출두할 듯

  • 입력 2001년 1월 10일 15시 58분


보스니아 전쟁 당시 세르비아계의 지도자로 대량학살을 자행한 전범 빌랴나 플라브시치(70·여)가 9일 유고 국제전범재판소에 자진 출두하기 위해 네덜란드 헤이그로 향했다.

플라브시치가 소속한 세르비아인민당(SNS)의 스베토자르 미하일로비치 부총재는 "플라브시치가 9일 아침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바냐루카를 떠나 국제전범재판소가 있는 헤이그로 향했다"고 말했다고 AP 통신이 보도했다.

미하일로비치 부총재는 "강인한 용기의 소유자인 그가 세르비아인의 품위를 지키기 위해 자진 출두했다"고 강조했다. 플라브시치의 남동생인 즈라브코 플라브시치도 "누이로부터 헤이그에 있다는 전화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제전범재판소측은 "플라브시치가 9일 오후까지 출두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급진 민족주의자였던 플라브시치는 92∼95년 보스니아 내전 때 세르비아계인 라도반 카라지치 대통령 정권에서 부통령을 지내며 '인종청소'를 자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내전 당시 그는 "비(非) 세르비아계 인종 청소는 전쟁 범죄가 아닌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강변했었다. 내전 초기에는 공개적으로 한 이슬람교도의 시체를 밟고 올라서 군 장성 젤리코 라즈냐토비치에게 입맞추며 '위대한 애국자'라고 칭송하기도 했다. 세르비아 급진주의자의 대명사인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유고연방 대통령마저 "그는 정신 이상자로 병원에 입원해야 한다"고 말했을 정도.

그는 96년 카라지치 축출 이후 98년까지 보스니아내의 세르비아계 공화국인 스르프스카 공화국의 대통령을 지냈다. 대통령이 된 플라브시치는 국제사회의 눈을 의식, 강경노선을 접었으나 전범재판소의 기소를 피하지는 못했다. 그는 밀로셰비치와 카라지치 등이 공개 기소된 것과는 달리 비공개 기소된 것으로 알려졌다.

자그레브 대학을 졸업한 플라비시치는 56년부터 사라예보 대학에서 생물학 교수를 역임하다 정계에 입문했다. 그는 97년 카라지치와 결별한 뒤 독자적으로 SNS를 결성했으나 지난 해 4월 지방선거에서 패배한 뒤 정계 일선에서 한발 물러나 있었다.

<박제균기자>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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