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바초프, 부시당선자에 공개서한

  • 입력 2000년 12월 26일 14시 59분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은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당선자에게 “21세기가 미국의 세기가 되어야 한다거나 될 수 있다는 환상은 포기하기 바란다”고 25일 워싱턴포스트지에 게재된 공개서한을 통해 충고했다.

그는 이 서한을 통해 “미국이 세계에서 행한 역할은 인정할 수 있지만 미국의 세계 지배, 혹은 패권은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세계화의 추세는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나 미국에 의한 세계화는 의미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실수가 될 것”이라면서 “일부 국민만 안락과 특권을 누리고 있는 미국의 현 상황은 세계인구 중 엄청난 수가 빈곤과 퇴보 속에 살고 있는 한 오래 지속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이어 “지난 10년간 미국의 외교 정책은 ‘냉전의 승전국 정책’처럼 추진됐으며 그 결과 평화 대신 불평등과 긴장, 미국에 대한 적대감이 심화됐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미국이 중국 인도를 비롯한 빈곤국과 올바른 방향으로 관계를 맺기란 어려우며 미국의 전통적인 맹방인 유럽과도 효율적이고 장기적인 협력관계를 설정하지 못할 것이라고 그는 전망했다.

옛 소련의 개혁과 개방을 이끌었던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특히 “냉전 종식이 한때 희망을 가져왔으나 이제 그 희망은 사라졌다”면서 “미국은 더이상 냉전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지난 10년간 냉전시대의 이념적 노선에 따라 행동해왔다”고 비판했다. 그같은 예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동유럽 확장, 유고 사태 처리, 국가미사일방어체제(NMD) 구축 등을 그는 거론했다.

그는 또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에 대해 “양국관계가 악화된 것은 비밀이 아니며 그 책임은 두 나라 지도부가 져야 할 것”이라면서 “현재의 러시아 지도부는 미국과 협력할 태세이나 부시 당선자가 러시아에 대한 외교 정책을 어떻게 세울지는 불분명하다”고 주장했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이어 “만일 우리가 새로운 세계질서를 구축하고 유럽통합의 촉진을 진정으로 바란다면 러시아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워싱턴·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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