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팔사태 Q&A]동예루살렘 확보싸고 갈등

  • 입력 2000년 10월 24일 18시 45분


28일째 계속되고 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유혈분쟁이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를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이―팔 간의 무력충돌은 갈수록 격화되고 있어 제5차 중동전을 우려하는 비관적인 관측마저 나돈다. 피비린내 나는 투쟁으로 점철돼 온 두 민족의 뿌리깊은 반목과 갈등의 원인 및 배경을 문답을 통해 알아본다.

▼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왜 원수사이가 됐나.

▼답▼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영토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영토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약속의 땅’이다. 하나님이 유대민족에게 선물했다는 이 땅에서 유대인은 기원전 12세기경 독립국가를 세워 번영을 누렸다. 기원전 1세기경 당시 패권국이던 로마의 속국으로 전락한 뒤 서기 135년 유대인은 로마의 통치에 저항해 이 곳에서 쫓겨나게 된다. 그 후 아랍인들이 이 땅을 차지했다. 그러다가 19세기말 유대인들이 이 곳으로 돌아오기 시작해 1947년에는 국가를 선포하자 이 땅에 뿌리를 내린 팔레스타인인과 충돌한 것이다. 유대인은 왜 옛 땅으로 돌아왔나.

유대인은 2000년 가깝게 나라 없이 세계 각지에 퍼져 살면서도 같은 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 유대교라는 종교를 구심점으로 관습과 문화를 유지해 온 것이다. 이들이 유랑생활동안 박해를 받은 것도 다른 민족에 동화하지 않으려는 배타성 때문이다.

근대 들어 유럽 각국의 민족주의가 고양되면서 유대인에 대한 차별과 박해는 더욱 심해졌다. 이 무렵부터 유대인의 나라를 재건하자는 ‘시오니즘’이 불타올랐다. 1930년대 나치독일의 유대인 말살정책은 이 불길에 기름을 부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국제사회의 동정여론에 힘입어 마침내 국가를 건설했다.

▼문▼

두 민족이 평화적으로 공존할 수 있는 길은 없나.

▼답▼

수십년 동안 피비린내 나는 분쟁을 겪어온 두 민족은 90년대 들어서면서 평화의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1993년에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평화협정을 맺고 팔레스타인 민족의 독립을 약속한다. 이 협정에 따라 팔레스타인은 94년부터 5년 동안의 자치기간을 거쳐 99년 5월 독립국가를 선포하기로 했다. 요르단강 서안 및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자치지역도 이 협정의 산물이다. 그러나 최종 평화협상 과정에서 서로의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시간을 끌다가 독립 선포를 올 5월로 연기했으나 이마저 실현되지 못했다.

▼문▼

최종협상이 타결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답▼

7년간이나 끌어온 평화협상 과정의 고비마다 양측의 발목을 잡은 걸림돌이 동예루살렘 문제였다. 역사적으로 여러 민족이 거쳐가면서 동예루살렘은 기독교와 유대교, 이슬람교 등 3개 종교의 공동성지가 됐다. 이 곳에는 유대교 성지인 ‘통곡의 벽’과 이슬람 성지인 ‘알 아크사 사원’, 기독교 성지인 ‘겟세마네 동산’ 등이 있다.

팔레스타인은 이 곳을 독립국의 수도로 삼으려 하고 이스라엘은 무슨 일이 있어도 동예루살렘만은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번 유혈분쟁도 동예루살렘을 둘러싼 양측의 갈등에서 촉발됐다.

<홍성철기자>sung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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