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살아보니]제프리 존스/자신감을 가지고 사세요

  • 입력 2000년 10월 18일 18시 37분


엊그제 한국 축구대표팀이 쿠웨이트한테 졌다. 그 바람에 월드컵도 아니고 올림픽도 아닌 기껏 아시안컵축구에서도 8강 진출을 낙관하지 못하는 처지가 되었다고 걱정들이 많다. 나는 밤을 새워가며 중계방송을 지켜볼 만큼 열렬한 팬은 아니지만, 하도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대화에서 소외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관심을 기울이는 편이다.

▼필요할땐 과감하게 '노'해야▼

참 신기한 것은 한국축구가 국내에서 친선경기를 하면 세계 랭킹 1위인 브라질을 이길 만큼 펄펄 나는데, 무슨 타이틀이 걸린 공식 대회에만 나가면 좀처럼 좋은 성적을 올리지 못한다는 점이다. 물론 스포츠 전문가들이 보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아직도 한국선수들의 자신감 부족을 가장 큰 이유로 꼽고 싶다.

이것은 축구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한국사람들은 스스로 가지고 있는 능력과 자질에 비해 지나치게 자신을 낮추는 버릇이 있다. 또한 실제로는 그렇게까지 자신을 낮추지 않는다 할지라도 겉으로 지나치게 자신감을 내보이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실례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외국 투자자들을 상대로 협상을 벌일 때 한국인 전문가와 같은 외국인 전문가를 붙이는 경우가 많다. 한국인 M&A전문가가 아무리 영어를 잘해도 오리지널 영어와는 미묘한 차이가 생길 수 있고 또한 외국인 전문가는 한국인 특유의 감정이나 정서에 약한 면이 있기 때문에 그들을 짝지어 놓으면 이른바 ‘찰떡 궁합’이 된다.

그런데 외국 투자자들은 가능하면 한국에 정통한 기업을 상대하고 싶어한다. 왜냐하면 어지간해서는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은 한국사람들의 마음씨를 역이용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한국사람들은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예스’인지, ‘노’인지를 그 자리에서 명확하게 밝히지 않는다. 속으로는 안되는 일이라고 마음을 정했으면서도 겉으로는 생각해보겠다며 여운을 남기는 것이다. 한국인들을 많이 상대하는 외국인들은 이제 한국인들의 그런 특징을 잘 알기 때문에 ‘전번에는 생각해 보겠다고 해놓고 이제 와서 딴소리를 하느냐’면서 밀어붙이는 전략을 흔히 구사한다.

이왕이면 상대방을 부드럽게 대하고 욕먹을 일은 하지 않으려 하는 한국사람들의 착한 마음씨는 사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개성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나만 욕먹지 않는다고 모든 일이 다 잘 풀리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욕을 먹을 때 먹더라도 맺고 끊는 것을 확실하게 해두는 것이 결과적으로 자신은 물론 상대방에게도 이익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에 대한 믿음과 자신감이 있어야 되는데, 이것은 어느 날 갑자기 ‘이제부터 나도 자신감을 가져야겠다’고 결심한다고 해서 되는 문제가 아니다.

공공장소에 아이를 데리고 나온 한국 어머니들을 보면 대개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아이가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만큼 장난을 치거나 시끄럽게 굴 때, ‘아저씨가 이놈 하신다’는 말로 아이를 타이르는 어머니가 많다. 이렇게 되면 아이는 언제나 남들에게 욕먹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틀 속에 자신을 가두는 성격이 되기 쉽다.

반대로 참다 못한 주변 사람이 아이를 꾸짖으면 ‘당신이 뭔데 우리 아이를 기죽이느냐’며 대드는 어머니도 본 적이 있는데, 이런 어머니 밑에서 자란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자신을 지키고 보살펴 줄 누군가에게 의지하게 된다.

▼능력과 자질은 충분▼

비록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한국사람들은 대부분 어려서부터 이 두 가지 가운데 하나의 방식으로 교육받는다. 두 가지 모두 진정한 의미에서 아이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을 수 있는 교육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한국축구가 기술과 체력이 부족해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는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사람들의 능력과 자질이 부족해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나친 자신감 때문에 낭패를 보는 일도 있을 수 있지만 한국사람들은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는 게 더 급하다. 내가 보기에 한국사람들은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다.

제프리 존스(주한 미국상공회의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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