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통령 노벨상 수상]해외반응- 발표장 스케치

  • 입력 2000년 10월 13일 23시 41분


미국 CNN방송 등 전세계 주요언론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소식을 일제히 주요기사로 취급했다. 외국언론들은 김대통령의 수상으로 한반도 긴장완화와 남북통일이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모리 요시로(森喜朗) 일본총리는 김대통령에게 축전을 보내 “대통령께서 긴 세월동안 흔들림 없이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해왔으며 반세기에 걸친 분단을 넘어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성공시켜 남북화해와 협력을 향한 새로운 조류를 만들었다”며 “일본정부는 빛나는 업적이 평가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밝혔다.

아사히신문의 경우 1, 2, 3면과 국제면 사회면 등에 수상소식을 크게 다뤘으며 요미우리 신문은 호외까지 냈다. NHK방송은 오후 7시 뉴스에서 노르웨이 오슬로 노벨평화상 위원회가 김대통령의 공적 내용을 발표하는 장면과 함께 ‘김대통령이 걸어온 길’이라는 특집도 방송했다.

○…리오넬 조스팽 프랑스 총리는 김대통령에게 보낸 축하 메시지에서 “지난 수십년간 김대통령이 인권과 민주주의의 가치들을 옹호하기 위해 보여준 용기 있는 행동과 결단에 찬사를 보낸다”며 “이런 감정은 나뿐만 아니라 프랑스 정부, 프랑스 국민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CNN방송은 “‘아시아의 만델라’로 불리는 김대통령이 150명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다”고 전했다. 영국 BBC방송은 40여년간 여러 차례 생명의 위협을 이겨내며 대통령에 당선된 뒤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과의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킨 김대통령의 정치역정을 자세하게 소개했다. 일간지 가디언 인디펜던트 이브닝스탠더드 등도 인터넷판을 통해 긴급 외신으로 보도했다.

독일 ZDF방송은 이제 김대통령은 ‘아시아의 만델라’로 불리게 됐다고 전했으며 슈피겔지는 남북간 자유를 향한 김대통령의 노력이 결실을 거두었다고 보도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과 화교대상의 통신사인 중국신문사는 ‘한반도 안정과 평화에 기여한 공로 등으로 김대통령이 노벨상을 받았다’며 스톡홀름발로 타전했다.

○…이날 오전 7시 군나르 베르게 노벨위원회 위원장은 역대 노벨평화상 수상자 사진이 걸려있는 회의실에서 나와 노르웨이어와 영어로 김대통령의 수상 사실을 발표했다. 발표장인 노벨연구소 3층 강당에는 발표시간 1시간반 전부터 한국 TV방송과 CNN BBC 등 외국 방송 취재진이 모여들었다. 오슬로 주재 한국대사관에는 1970년대 한―노르웨이 친선협회장을 지낸 프란크 얀센(64) 등 지한(知韓)인사들이 찾아와 축하 인사를 했다.

<오슬로·도쿄·베이징〓김세원·이영이·이종환특파원>claire@donga.com

▼노벨평화상의 유래와 의미

“국가간의 우호와 군비의 축소 또는 제거, 평화회의의 유치 또는 증진에 기여한 개인이나 단체에 매년 시상하라.”

1895년 파리에서 작성된 한통의 유서에 나오는 이 구절이 ‘노벨상의 꽃’이라 불리는 노벨 평화상을 탄생시켰다. 유서 작성자는 스웨덴의 화학자이자 기업가인 알프레드 베르나르드 노벨. 다이너마이트 발명으로 거부(巨富)를 이룩한 노벨은 자신의 유산을 스웨덴 한림원에 기부한다는 유서를 남긴 뒤 이듬해 숨을 거뒀다. 1896년 노벨 타계 직후 공개된 이 유서는 세인을 놀라게 했다. 유산을 노렸던 조카 2명은 유서의 법적 효력을 무효화하려고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스웨덴 국왕이던 오스카 2세도 노벨이 거액의 유산을 전 세계에 바친 데 대해 “애국적인 자세가 아니다”고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노벨의 유지(遺志)는 존중됐다. 1901년 노벨재단이 설립됐고 그 해부터 노벨상 시상이 시작돼 올해로 꼭 100년째다.

노벨이 유서에서 평화상의 시상 권한을 노르웨이로 넘긴 것은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다른 부문의 수상자 발표는 노벨의 뜻에 따라 스웨덴 한림원이 한다. 하지만 평화상만은 노르웨이 퇴임 국회의원 5명으로 구성된 노벨위원회가 발표한다.

다른 부문의 시상식은 매년 12월10일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의 콘서트 홀에서 거행되지만 평화상만은 같은 날 노르웨이 오슬로 시청에서 이루어진다. 시상 날짜와 시간(오후 4시반)은 같은 시간 이탈리아의 휴양지 산레모에서 숨을 거둔 노벨을 기리기 위해 정해졌다.

노벨이 평화상의 시상 권한을 노르웨이로 이양한 것과 관련, 1905년까지 스웨덴과 동맹 관계였던 노르웨이를 노벨상에 참여시키기 위한 배려였다는 분석이 있다. 1904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노르웨이 작가 비에른손(1832∼1910)이 국제평화를 위해 노력했던 점을 마음에 담아오다 노르웨이에 시상권을 주었다는 후문도 있다.

<박제균기자>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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