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를 달린다]하용출/"잠재력 다시보자"

입력 2000-09-03 19:09수정 2009-09-22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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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러시아연구소와 국제문제연구소의 시베리아 연구팀은 동아일보, KBS와 공동으로 7월 4일부터 24일까지 20일간에 걸쳐 국내 최초로 시베리아를 횡단하는 연구여행을 수행했다. 이달 30일, 한러 수교 10주년을 기념해 마련된 이 여행은 시베리아횡단철도를 이용해 이뤄졌다. 블라디보스토크를 출발하여 하바로프스크 이르쿠츠크 노보시비르스크 예카테린부르그를 거쳐 모스크바에 이르는 장장 9300km의 긴 여정이었다.

연구팀은 세 가지 주제에 대한 관심을 갖고 떠났다. 우선 개혁과정에 있는 지방의 정치, 경제 사정, 특히 중앙과 지방의 혼란스러운 관계를 중점적으로 살피고자 했다.

둘째, 한국과의 경제협력 가능성을 타진하고자 했다. 때마침 남북한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국을 출발한 철도가 경의선 경원선을 통해 북한을 거쳐 시베리아 철도와 이어질 가능성이 크게 높아진 시점이어서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현황과 문제점, 철도 연결이 가져올 파급효과에 주목하고자 했다. 셋째, 시베리아에 거주중인 동포의 삶에 관심을 갖고 출발했다. 당연히 한민족의 이주 역사에 관련된 지역과 도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연구팀에 다가온 시베리아는 이런 연구주제에 대한 지식 이외에도 크나큰 감격과 감동을 안겨주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베리아의 한국적 재발견이었다. 시베리아는 이제껏 지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잊혀진 대륙이었다. 만주의 북쪽정도로 생각해온 까닭에 하바로프스크의 서쪽 대륙은 대부분 낯설게 여겨졌다.

이번 여행을 통해 이르쿠츠크만해도 하바로프스크에서 열차로 2박 3일간이나 걸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끝없이 펼쳐지는 광활한 푸른 대륙, 시베리아를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차창 안에서 바라보며 50년 이상 잊혀졌던 대륙이 되살아나는 강한 느낌을 받았다.

이러한 감격과 함께 과연 우리 연구자가 이 지역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에 대한 반성을 했다. 경제적 관심에 몰두해 이 지역을 에너지와 광물자원의 공급지 정도로만 인식해온 것은 아니었을까. 그러나 이 지역에는 어려운 자연 환경을 극복하면서 수백년 동안 도시를 건설하고 독특한 지역문화를 가꿔온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극동의 미항(美港) 블라디보스토크, ‘시베리아의 파리’로 불리는 이르쿠츠크, 시베리아의 중심이며 세계적인 학문의 도시 노보시비르스크, 아시아와 유럽을 가르는 예카테린부르그 등 저마다 각기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시베리아의 여러 도시에서 받은 인상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새로운 시장체제에 부단히 적응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실제 대부분 지역의 경제는 1998년 이후 정체에서 벗어나 성장으로 돌아섰다.

이 지역 정치인이나 주민은 한국에 대해 매우 높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대학이나 연구소는 물론 지방정부도 한국과 학술, 문화, 경제 교류 확대를 간절히 바랐다. 특히 정부나 철도 관계자들은 남북한 철도의 연결이 시베리아 횡단철도와 이어지게 될 경우 발생할 경제적 효과에 큰 기대감을 나타냈다.

이 지역 동포는 대체로 높은 평판을 얻고 있었다. 대부분 높은 교육을 받은 까닭에 빠르게 변모하는 경제체제에 잘 적응하고 있었다.

거대한 대륙은 이제 잠에서 깨어나려 하고 있다. 이번 여행을 통해 지금까지 잊혀진 이 대륙이 단지 경제적 관심 대상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야 할 지역 공동체의 일환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단지 자원의 공급지나 관광의 대상이 아니라 한반도와 연결된 거대한 대륙으로 협력과 상호 이해를 통해 한민족의 대륙적 정체성을 다시 찾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동아일보의 이번 시베리아횡단 특별 시리즈가 한국민의 시베리아에 대한 이해를 높여 장기적인 관계 정립을 위한 준비에 기여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하용출(서울대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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