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야수쿠니신사 참배 행렬]大日帝國 부활 방불

  • 입력 2000년 8월 15일 18시 43분


15일 일본 도쿄(東京) 야스쿠니(靖國)신사는 역사의 시계가 거꾸로 돌아간 모습이었다.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다 패배한 ‘대일본제국’이 부활한 듯했다.

A급 전범 14명 등 제2차 세계대전 중 숨진 군인과 군속 246만6000여명의 위패가 있는 야스쿠니신사는 이날 아침 일찍부터 집단 참배객과 옛 군복 차림에 일본 국기인 히노마루와 전쟁 때 사용된 ‘욱일기(旭日旗)’를 앞세운 퇴역군인, 대일본제국의 부활을 요구하는 각종 플래카드를 든 우익단체 회원들로 붐볐다.

▼법무-운수상 "공인자격 참배"▼

오전 8시경 히로시마(廣島)현을 시작으로 기후(岐阜) 와카야마(和歌山) 야마가타(山形)현의 깃발을 앞세운 집단참배객이 전세버스편으로 속속 도착했다.

8시 55분 오시마 다다모리(大島理森)문부상이 각료 중 가장 먼저 참배했다. 이날 참배한 현직 각료는 야스오카 오키하루(保岡興治)법무상, 모리타 하지메(森田一)운수상, 히라누마 다케오(平沼赳夫)통산상 등 10명. 8명은 개인 자격으로 참배했지만 야스오카 법무상과 모리타 운수상은 “공인으로 참배했다”고 밝혔다.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 소속 중의원 145명과 참의원 55명 등 200명이 이날 직접 혹은 대리인을 통해 참배했다. 야스쿠니를 참배한 의원 수는 지난해보다 40명 늘었다. 모리 요시로(森喜朗)총리는 참혹한 피해를 당했던 중국 한국 등 아시아 국가의 반발을 고려해 참배하지 않았다.

9시 15분경 신사 밖에서 ‘일본은 아시아 인민에게 사죄하라’ ‘야스쿠니신사 참배 각료 탄핵’ ‘히노마루 기미가요 분쇄’ 등 구호가 마이크를 통해 들렸다. 전학련단체 소속 학생 6명이었다.

9시 25분경 우익단체 회원 6명이 ‘성전(聖戰) 대동아전쟁’ ‘침략전쟁론 분쇄’ ‘정부는 야스쿠니신사에 공식 참배하라’고 쓰인 깃발을 들고 참배했다. 이들은 참배를 마치며 ‘천황폐하 만세’를 외쳤다.

10시 20분경 옛 해군군복 차림에 칼까지 찬 퇴역 군인 30여명이 욱일기를 들고 입장했다. 당당하게 행진하는 이들을 향해 참배객들의 박수가 쏟아졌다.

▼우익 집단참배객 많아▼

10시30분 ‘영령에 대답하는 모임’이 주최하는 ‘제14회 전몰자추도 중앙국민회의’가 열렸다. 1500여명이 참석했다. 주최측은 야스쿠니신사를 특수법인으로 하거나 A급 전범의 위패를 다른 데로 옮기려는 계획에 반대하는 내용의 결의문을 채택했다. 한 참배객이 ‘세계평화의 실행자 일본천황’이라고 쓴 플래카드를 들고 행사장을 지나갔다.

정오. 신사전체가 일순 정적에 빠졌다. 합동묵념. 곧 이어 ‘천황의 말씀’이 확성기를 통해 들렸다. “전화로 숨진 영령을 마음 깊이 추도하며 세계 평화와 일본의 발전을 기원한다”는 내용으로 이날 다른 장소에서 정부 주최로 열린 추도식에서 낭독된 내용이 중계된 것.

신사 주변 책방에서는 ‘국민의 역사’ ‘대동아전쟁 그후’ 등 일본의 전쟁 책임을 부인하는 책이 날개돋친 듯 팔려나갔다. 국기를 사는 사람도 많았다.

신사 안에는 ‘항공모함 창룡회’ ‘제12비행단’ ‘버마파견 독립자동차 237중대’ ‘자바 35회’ ‘보병제36연대’ ‘비행62전대’ 등이 기증했음을 나타내는 푯말이 붙은 나무가 눈에 많이 띄었다.

신사 밖 도로변에는 우익단체 회원이 타고온 대형버스 수십대가 주차돼 있었다. 이들은 기세등등하게 확성기로 군가를 틀어대며 총리가 공식 참배할 것을 요구했다.

<도쿄〓심규선특파원>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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