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선 사형 논란 증폭…시민단체 부시 맹비난

  • 입력 2000년 8월 10일 18시 55분


미국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대통령 후보가 주지사로 있는 텍사스주 당국이 9일 사형수 2명에게 형을 집행해 대선정국에서 사형제를 둘러싼 논란이 증폭될 전망이다.

텍사스주는 88년 여성을 성폭행한 뒤 살해한 올리버 데이비드 크루즈(33)와 86년 노부부를 살해한 브라이언 케이스 로버슨(36) 등 2명에게 약물주사를 놓아 처형했다.

이 중 크루즈는 지능지수가 63인 저능이어서 미국 변호사협회와 프랑스 스웨덴 등 유럽국가들은 그에게 사형을 집행하지 말 것을 부시 주지사에게 촉구했었다.

텍사스 주법에는 주지사가 사형집행을 중단할 때는 주 사면 가석방 심사위원회의 승인을 얻게 돼 있으나 이 위원회는 18대 0의 표결로 2명의 사면 요청을 기각했다.

텍사스는 82년 사형제도 부활 이후 지금까지 모두 227명의 사형수를 처형해 미국에서 가장 사형집행률이 높은 주. 이 중 140명은 부시 주지사 시절 사형에 처해졌다.

이를 근거로 사형제도에 반대하는 시민단체 등은 “부시 주지사가 표방하는 ‘온정적 보수주의’는 허구”라고 비난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14일 뉴욕의 한 유세에서 유죄의 증거가 불충분한 사형수가 처형된 것에 항의하는 시위대로부터 야유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부시 주지사는 “수사기관과 사법부가 엄정한 증거와 절차에 따라 내린 결정을 존중한다”며 사형집행을 옹호하고 있다.

반면 민주당의 대선 후보로 나설 앨 고어 부통령은 사형제도에 대한 명백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연방정부 차원에선 사형이 합법이고 주별로 사형제도가 다른 상황에서 섣불리 끼어들었다가 긁어 부스럼을 만들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

빌 클린턴 대통령은 2일 사형수 환 라울 가르사(43)에 대한 형 집행을 4개월간 연기하는 조치를 취해 부시 주지사와는 대조적인 행보를 보여줬다.

물론 이 조치는 사형수에게 형 집행을 120일 전에 알려주고 이로부터 30일 이내에 대통령에게 감형을 청원할 수 있도록 한 법무부의 새 규정을 시행한 데 따른 것. 그러나 가르사에게 감형 청원을 할 기회를 주기 위한 것이라는 명분의 이면에는 사형집행을 많이 한 부시 주지사와의 차별화 전략도 깔려 있다.

<워싱턴〓한기흥특파원>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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