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드 死後의 중동]中東평화 앞날 험로 예상

  • 입력 2000년 6월 11일 19시 38분


하페즈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은 아랍 민족주의를 내걸고 수십년간 이스라엘-아랍간의 적대 구도를 이끌어온 중심 인물. 그런 그가 10일 갑작스럽게 사망함으로써 중동평화 협상은 중심축을 잃게 됐다.

특히 아사드의 퇴장으로 골란고원 반환을 둘러싼 시리아-이스라엘 평화협상은 앞으로 상당기간 정체될 것으로 보인다. 그는 1967년 제3차 중동전 당시 국방장관으로 이스라엘에 골란고원을 빼앗기는 수모를 겪었다. 때문에 골란고원 반환은 그의 평생 숙원이었다.

그래도 그는 모든 평화협상의 배후에서 아랍의 단결을 외치며 이스라엘에 강경 입장을 고수해왔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79년 캠프 데이비드협정으로 이집트가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93년 아라파트가 오슬로 평화협정을 체결할 때도 아랍의 대의를 버릴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그는 아랍권의 대부로 존경을 받아왔다.

아버지의 강경 노선 때문에 아들 바샤르 알 아사드(34)가 권력을 잡는다 해도 당분간 유화책을 들고 나오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특히 군부와 국민의 지지를 이끌어내야 할 상황이기에 더 그렇다.

이와 함께 76년 군대를 진주시켜 영향력을 행사해온 레바논과의 관계도 레바논 국민이 아사드의 사망을 계기로 시리아의 간섭을 배제하고 홀로서기를 시도하려 할 경우 크게 변화할 가능성이 있다.

이제 아랍 민족주의 1세대로는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만이 남았다. 지난해 요르단의 후세인 국왕에 이어 아사드마저 사라졌기 때문이다. 아라파트는 이제 홀로 남아 이스라엘과 힘겨운 협상을 벌이게 됐다.

▽시리아 정정은?〓아사드 사후 바샤르가 권력을 장악해 안정을 유지할 수 있을지도 커다란 관심사다. 의회가 특별회의를 열어 헌법을 수정한 뒤 집권 바트당이 바샤르를 차기 대통령 후보로 내세움으로써 일단 그의 후계 구도에 이상은 없어 보인다.

실제 바샤르는 최근 부패 척결 운동을 주도하면서 대대적인 숙청작업을 벌여 사실상 실권을 휘둘러왔다.

그러나 군 경력이 일천한 그가 권력의 핵심인 군부를 장악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삼촌인 리파트 아사드와의 막후 권력 투쟁도 예상된다. 군부는 언제든지 독자적인 후계자를 옹립할 가능성이 있다는 게 관측통들의 시각이다.

종교도 커다란 변수다. 아사드 가문은 시리아내 소수파인 시아파 이슬람교에 속하지만 아사드는 탁월한 지도력으로 다수파인 수니파를 다스려왔다. 그러나 철권 통치에 숨을 죽여왔던 수니파가 고개를 든다면 혼란은 불가피하다.

▼아사드는 누구?/'아랍의 비스마르크'별명▼

하페즈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은 10일 레바논 대통령과의 마지막 전화통화에서 “아이들에게 보다 안전한 미래를 넘겨주는 게 우리의 의무”라고 말했다. 평생 아랍 민족주의와 반(反)이스라엘을 기치로 내걸었던 그였던 만큼 마지막 말도 아랍의 대의를 위한 것이었다.

그는 1946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이후 쿠데타가 유독 많았던 시리아를 안정시키고 지역강국으로 부상시켰다. 그러나 그는 집권 30년 동안 철권통치로 악명높았다. 82년엔 수니파 ‘모슬렘 형제들’의 소요를 무차별 진압, 1만∼2만5000명이 숨지기도 했다.

그는 아랍어로 ‘사자’란 뜻의 아사드 가문 출신. 1930년 북부 해안도시 카르다하의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55년 공군 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바트당에 가입했다. 바트당이 집권한 63년 쿠데타에서 요직을 맡았으며 65년 공군사령관, 국방장관에 임명됐다. 70년 무혈쿠데타로 집권했다.

뛰어난 정치적 감각과 책략으로 ‘아랍의 비스마르크’라 불렸다. 국제관계에서는 옛소련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 원조를 얻고 걸프전 때는 연합군의 편을 드는 등 철저한 실리파였다.

<윤양섭기자>lailai@donga.com

▼후계자 부상 바샤르?/부패추방운동 앞장▼

집권 바트당이 후계자로 지목한 아사드의 둘째 아들 바샤르(34·사진)는 90년대 초반만 해도 존재가 거의 알려지지 않았으나 98년 아버지가 삼촌 리파트를 부통령 자리에서 쫓아낸 이래 정권후계자로 급속히 부상하기 시작했다.

바샤르는 다마스쿠스의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영국으로 건너가 안과를 전공하던 중 94년 친형인 바실이 교통사고로 숨지자 곧바로 귀국, 사관학교에 입교했다. 졸업 후 탱크대대 지휘관을 시작으로 군경력을 쌓았으며 지난해 대령으로 승진한 뒤 정계에 진출, 지도자수업을 받아왔다. 그는 컴퓨터에 큰 관심을 보여 컴퓨터학회장을 맡기도 했으며 98년 시리아 최초로 인터넷 사이트를 개설하는 등 정보기술을 보급하는 데 주력하기도 했다.

그는 최근 시리아 내 부패를 추방하는 운동을 주도하면서 4월 부패혐의로 마흐무드 알 조흐비 총리를 경질하고 부패관리를 구속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지난해 그는 아버지를 대신해 후세인 요르단 국왕의 장례식에 참가한 것을 계기로 프랑스와 주변 중동국가를 순방하고 시리아를 방문한 외교사절을 직접 영접하는 등 정치적인 입지를 넓혀왔다. 바샤르는 집권 바트당의 절대적인 지지로 무난히 권력을 승계할 것으로 보이지만 전통적으로 강한 군부의 지지를 확보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백경학기자>stern10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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